유럽연합, 비동의 강간죄에 관한 찬반 공방 지속
        등록일 2024-01-29

        유럽연합, 비동의 강간죄에 관한 찬반 공방 지속

        곽서희 레이든 대학교(Leiden University) 지역학과·정치학과 강사(Lecturer)

        • 지난달 13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유럽연합 이사회(European Council), 유럽연합 의회(European Parliament)가 모인 3자협상이 열렸다. 의제는 바로 유럽연합 차원에서 채택하고자 하는 여성대상폭력 및 가정폭력에 관한 지침안(Directive on Combating Violence against Women and Domestic Violence)이었다. 그러나 협상은 성폭력에 관한 정의에 있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본고에서는 현재 유럽연합 차원에서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쟁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이러한 법적 조항이 없는 국가에서는 여전히 위력이나 위협이 있었다는 점을 피해자 측이 입증해야만 성폭력이라는 범죄로 인정되는 데다가, 회원국마다 성폭력을 정의하는 방식이 달라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회원국 내 성폭력 피해자, 특히 여성들이 피해자로 보호받고 가해자는 처벌받을 것이라는 제도적 신뢰는 낮고, 신고 및 수사 과정에서 겪게 될 2차 위협이나 사회적 주홍 글씨가 두려워서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사법기관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 역시 지적되어 왔다.
        • 본 지침안은 강제 혼인, 할례, 온라인 성추행, 강제 불임수술 등의 문제를 근절하겠다는 목표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위원회 위원장은 작년 9월, 유럽연합 연례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에서 유럽연합 내 합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성폭력으로 범죄화하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 추진을 밝히고 지지를 요청한 바 있다.
        • 전반적인 여성대상폭력 근절, 강제 혼인이나 온라인 성추행 등의 내용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원국들이 동의하고 있지만, 성폭력 정의에 있어서 만큼은 회원국들이 입장이 찬반으로 팽배하게 갈리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등은 찬성하는 반면 프랑스, 독일, 폴란드, 헝가리 등이 이 조항에 반대하고 있다. 
        • 특히 프랑스 정부의 경우, 시위 및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성폭력은 유럽연합 차원에서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테러리즘, 부패, 성착취와 같은 문제가 아니므로 유럽연합이 지침안에 성폭력 관련 내용을 담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회원국들이 국내 형법 조항과 내용에 부합하는 방향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합의’를 정의하거나 입증하는 것 역시 매우 모호하며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 현재 유럽연합 회원국들마다 성폭력를 범죄로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며, 이는 국가의 성평등 수준에 상관없이 양분된 양상을 보인다.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성폭력이라고 규정하는 국가들이 있는 반면,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압력을 통한 성관계로 판명되었을 때 성폭력이라고 보는 형법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 예를 들어 벨기에는 성폭력을 정의할 때 합의 여부를 포함하는 반면, 이탈리아에서 성폭력은 일정 수준의 힘, 권력, 협박을 가해 이뤄지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 국제적인 인권단체 Human Rights Watch에 따르면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중 13개 회원국만 합의없는 성관계를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조항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Human Right Watch는 지난 11월, 프랑스 정부 측에 유럽연합 지침안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는 공식 서한이자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 지난 최근 몇 년간 프랑스는 성폭력과 기타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왔다. 그리고 합의에 기반한 성관계 최소 연령은 15세로 설정하고 있다. 마크롱 정부는 가정폭력 및 여성대상폭력 철폐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일각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 본 지침안 합의가 무산되자,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유럽의회 건물 앞에서 지침안 통과를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고, 프랑스 파리에서도 정부가 유럽연합이 제시하는 지침안을 승인할 것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시민단체들의 지침안 채택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여러 회원국들의 제도적 해석이 다르다보니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난행이 예상된다. 또한 유럽연합 차원뿐만 아니라 회원국들의 국내 정치적·사회적 찬반 논쟁 역시 계속되고 있다.
        • 유럽연합의 지침안 협의는 올해 계속될 예정이다. 현재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Presidency of the Council of the European Union)은 벨기에이고, 임기는 6개월이다. 다음 의장국은 지침안에 반대하고 있는 헝가리다. 그동안 찬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온 만큼 협상 과정이 쉽지 않겠으나, 앞으로 어떤 결과를 맺게될 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만하다.

        <참고자료>
        ■ AP News (2023.11.25) "Activists call on France to endorse a consent-based rape definition across the entire European Union", https://apnews.com/article/eu-rape-law-definition-consent-protest-7f73e19bd943e5d2e308143dd51dd555 (접속일자: 2024.1.19.)
        ■ ■ Euractiv (2023.12.14) "Paris under fire after latest refusal to adopt EU-wide rape definition", https://www.euractiv.com/section/health-consumers/news/paris-under-fire-after-latest-refusal-to-adopt-eu-wide-rape-definition/ (접속일자: 2024.1.19.)
        ■ Euranet Plus (2023.9.22), "Defining consent in europe", https://euranetplus-inside.eu/defining-consent-in-europe/ (접속일자: 2024.1.19.)
        ■ Human Rights Watch (2023.11.22), "Human Rights Watch letter to the French Government on the definition of rape in the EU Directive on Violence Against Women", https://www.hrw.org/news/2023/11/22/human-rights-watch-letter-french-government-definition-rape-eu-directive-violence (접속일자: 2024.1.19.)
        ■ Le Monde (2023.11.16), "France opposes draft EU-wide definition of rape", https://www.lemonde.fr/en/international/article/2023/11/16/france-opposes-draft-eu-wide-definition-of-rape_6261066_4.html (접속일자: 2024.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