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정책연구원 Korean Women's Development Institute

곽서희, 에라스무스 로테르담 대학(Erasmus University Rotterdam)
국제사회과학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al Studies) 객원연구원

 

 

○ 2022년 10월, 이탈리아에서는 사상 첫 여성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출범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극우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Brothers of Italy)’ 대표인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다. 이탈리아의 형제들(Brothers of Italy)이 이끄는 우파연합이 조기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무솔리니가 취임했던 1922년 이후 100년 만에 이탈리아에서 극우정당 출신 총리가 취임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공화정 정부가 들어선 이래 여성 정치인이 진출한 가장 높은 직급은 외교부 장관, 상원의장이었다. 이탈리아 사상 첫 여성총리인 만큼, 멜로니 총리는 과연 여성 및 양성평등 추진 정책에 대해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는지, 정치 및 사회 일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멜로니 총리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자녀를 키우고 있는 미혼 워킹맘이다. 그리고 본인이 겪은 성 고정관념, 젠더기반 온라인 협박이나 괴롭힘 등의 문제점을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언급해 왔다. 하지만 멜로니 총리가 오늘날 이탈리아 여성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비판적인 관점도 있고, 여성인권 개선 여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 총선 유세 기간 동안 멜로니는 본인이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게 맞서는 강인한 여성이자 이탈리아에서 정당을 이끄는 유일한 여성임을 강조해왔다. 반면 본인을 여성주의자(feminist)라고 묘사하지는 않았으며, 기업 내 의사결정직 여성할당제(pink quota)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성별이 아니라 개인 역량으로 그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 그리고 멜로니 총리는 공식석상에서 본인은 (전통적인) 가족을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발언하였고, 임신중지와 성소수자(LGBTQ+) 사회운동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멜로니측이 추진한 주요 공약 중 하나는 출산율 증대인데, 이를 위해서 정책적으로 자국민 여성들에게 출산을 장려하는 반면, 이민자 여성들이 자녀를 낳는다면 이탈리아의 인종 구성비율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고집한다. 
○ 특히 멜로니가 속한 정당인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은 임신중지 서비스 접근성을 더욱 어렵게 하거나 수술할 수 있는 임신 주수를 축소해왔다. 멜로니는 임신중지를 금지하지는 않겠으나 여성들에게 임신중지 말고 다른 옵션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해왔다. 예를 들어 임신중지를 포기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여성에게는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임신중지가 합법이고 공립병원에서는 무료로 임신중지 수술을 받을 수 있으나, 의료진이 개인의 판단이나 신념에 따라 임신중지 수술이나 약물 처방을 거부할 양심적 거부 권리가 보장된다. 
○ 유로뉴스(Euronews)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지역별 정당 기반에 따라 임신중지 서비스 접근성에 격차가 크다는 점을 보도한 바 있다. 보수 정당이 우세한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임신중지 약 처방 및 수술을 거부해서 현실적으로 여성들이 시의적절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멜로니가 총리로 지명될 가능성이 커지자, 9월 말 이탈리아 주요 도시 곳곳에서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멜로니와 이탈리아의 형제들을 향해 기존의 임신중지법을 개정하지 말 것, 그리고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한 이탈리아 기자는 영국 온라인 매체 오픈 데모크라시(Open Democracy)와의 인터뷰에서 멜로니 총리는 선거에서 이기려고 본인이 여성이라는 점을 내세웠는데, 여성이라고 해서 반드시 여성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오픈 데모크라시(Open Democracy)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한 정치철학자는 멜로니 총리는 대체로 남성과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성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발언해 왔고, 백인, 이탈리아 자국민이라는 특정 사회집단에 중점을 두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멜로니 총리는 여성은 여성다워야 하고, 여성은 본래 엄마가 되는 것이 순리라고 여긴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멜로니가 앞으로 여성은 재생산, 육아 부분을 맡는다는 성역할을 고착화하는 정책들을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망했다.
○ 멜로니의 정책 공약 노선을 토대로 미루어보건대 새 내각이 여성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The Guardian)에 따르면, 중도진보 성향의 민주당(Democratic Party) 소속인 한 의원은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정부 하에 이탈리아 여성 인권은 일보 후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여성 유명인사들도 멜로니 총리의 가족계획 정책, '전통적인' 가족 관념을 중시하는 태도, 소수인종 여성의 권리 무시 등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한 여성 가수는 멜로니의 공약은 이성애자이면서 가톨릭교회가 추구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여성을 강조하고, 성 소수자 및 소수인종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글을 게시했다. 또 다른 한 유명가수 역시 본인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멜로니 총리 측이 내세운 공약들은 전형적인 기존 가족의 이미지와 성 정체성을 고수하는 정책 공약들이라며 공개 비판했다.
○ 이 밖에도 이탈리아에서는 여성 대상 폭력이 여성 관련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어왔다. 2021년 8월부터 2022년 7월 일 년여 간 여성 대상 살해(femicide) 사건은 125건에 이르렀으며, 수치를 환산하면 3일에 한 명 이상 꼴로 살해당한 셈이다. 가해자는 대부분 자국민이었는데, 멜로니가 속한 정당은 외국인이 저지른 여성대상 살해 사건들만 공론화 시키고 주의를 끄는 데 활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는 2022년 10월 22일 출범했다. 이탈리아 사상 첫 여성 총리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 여성 총리가 과연 양성평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지, 여성 관련 사회 현안들을 어떻게 다루어 나갈지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 AP News (2022.9.28) "Italians march for abortion rights after Meloni victory", https://apnews.com/article/abortion-elections-marriage-italy-808172ad84f4f3d35feef3645633bd06 (접속일: 2022.11.23.).
■ Euronews (2022.9.28) "Italy election: Activists raise alarm over abortion rights after Meloni's win", https://www.euronews.com/2022/09/27/italian-activists-raise-alarm-over-abortion-rights-after-melonis-win (접속일: 2022.11.23.).
■ Open Democracy (2022.9.26) "The anti-women agenda of the woman set to be the next Italian prime minister", https://www.opendemocracy.net/en/5050/giorgia-meloni-far-right-brothers-of-italy-election-prime-minister-racism-gender/ (접속일: 2022.11.23.).
■ Politico (2022.9.2) "Will Italy’s first female prime minister be bad for women?", https://www.politico.eu/article/italy-first-woman-prime-minister-giorgia-meloni-mario-draghi-brothers-abortion-feminist-levante-chiara-ferragni-elodie/ (접속일: 2022.11.23.).
■ The Guardian (2022.9.29) "Italy’s Giorgia Meloni denies she is anti-women as credentials questioned",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sep/29/giorgia-meloni-italian-women-abortion-pink-quotas (접속일: 2022.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