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부, 유급 생리휴가제 입법 추진
        등록일 2022-06-30

        스페인 정부, 유급 생리휴가제 입법 추진

        곽서희, 에라스무스 로테르담 대학(Erasmus University Rotterdam)
        국제사회과학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al Studies) 객원연구원

         

        ○ 지난달, 스페인 내각은 여성 근로자의 생리휴가를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법안에 따르면, 생리기간 중 생리통을 겪는 여성 근로자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할 경우 3일, 중증의 통증으로 업무나 일상생활이 힘든 경우 5일간 생리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유급휴가로, 국가의 사회보장시스템에서 임금을 부담한다. 정부는 본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며, 하원과 상원을 통과해야 법률로 제정된다. 만약 법률로 제정 및 시행되면,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연간 약 2,400만 유로(한화 약 323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 이번에 도입하게 된 생리휴가제는 스페인 정부가 추진하는 포괄적인 출산·생식 보건정책 개혁의 일환이다. 즉 이번 재생산 보건정책 개혁안은 출산 및 생식보건 분야에 있어 여러 가지 정책 수정 방향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중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기존에는 16-17세 미성년자 청소년이 임신한 경우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임신중지가 가능했다. 하지만 본 법안에서는 낙태법을 일부 개정하여 앞으로는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서가 없어도 임신중지 시술을 받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모든 공공의료시설에서 임신중지 시술이 제도적으로 가능해진다. 단, 임신중지 시술을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의료진이 양심적으로 거부하는 경우 그 의사를 존중한다.

        ○ 그리고 본 법안이 통과되면 여성 근로자는 임신 39주부터 유급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 밖에도 이번 스페인 정부의 출산·생식 보건 정책 개혁안은 성차별주의, 원치 않는 임신이나 성병을 예방하기 위한 전 연령대 학생 대상 성교육 실시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생리대가 필요한 여학생들에게 무료로 생리대를 배포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소외계층에 속하는 여성인 경우 무료로 생리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 정부는 이번 개혁안을 통해 생리대에 부과되던 부가가치세율을 폐지하고자 했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일부 반대가 있었다. 생리대 부가가치세율을 4%로 낮추자는 주장도 제기 된 바 있으나 이번에 발표된 법안에서는 우선 현행 10%로 유지한다. 이레네 몬테로(Irene Montero) 평등부 장관(Minister of the Ministry of Equality)은 내년 정부 예산을 책정하게 되는 시기에 이르면 다시 이 문제를 의제로 제기하여 추진해 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 이번 법안에 대해 이사벨 로드리게즈(Isabel Rodríguez) 스페인 정부 대변인은 여성을 위한,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진일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레네 몬테로(Irene Montero)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여성의 생리가 사회적 금기사항도 아닐뿐더러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진통제를 먹거나 아픈 배를 잡고 출근해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여성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 페드로 산체스(Pedro Sanchez) 총리는 본인의 공식 트위터(Twitter) 계정을 통해 이번에 추진하고자 하는 법안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적용했으며, 여성은 본인의 신체에 대해 자유롭고 주체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또한 올해 초, 산체스(Sanchez) 총리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도입하는 것이 곧 가장 바람직한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하지만 본 법안이 의회를 수월하게 통과하여 법률로 제정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번 법안은 올해 중 하원 투표에 앞서 공청회도 개최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소수연정 내각이 이번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 정도로 의회로부터 충분히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제기되었다. 일각에서는 여성 근로자에 대한 인식을 더 악화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제1야당인 보수 성향의 국민당(Popular Party) 역시 정부의 재생산 보건 정책 개혁안 발표에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Alberto Nunez Feijoo) 당대표는 이번 정부가 최근 논란이 되었던 정보당국의 정부 고위 인사 일부를 대상으로 한 휴대폰 도청 의혹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는 정치적 시도에 불과하다며 비판했다. 

        ○ 노동계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양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페인의 주요 노동조합 중 하나인 스페인노동총연맹(Unión General de Trabajadores, UGT)의 크리스티나 안토냔자스(Cristina Antoñanzas) 부대표(Deputy Secretary)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생리휴가제 도입이 장기적으로는 여성이 취업하는데 도리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미 구직 과정에서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는가’와 같은, 남성에게는 묻지 않는 질문들을 여성 구직자에게 묻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생리기간 중 생리통이 심한 편인가’라는 질문까지 추가될 형국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번 법안 논의 과정에서 노동조합들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반면 또 다른 노동조합인 스페인 노동자위원회(Comisiones Obreras) 측은 이번 생리휴가제 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여성 근로자가 아파하면서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생리기간 중 겪는 고통을 숨길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번 법안의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했는데, 그중 하나는 의사 소견서 의무 제출이다. 실질적으로 많은 사례가 의학적인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앙헬라 로드리게스(Ángela Rodríguez) 평등·반(反)성범죄부 장관(Secretary of State for Equality and against Gender Violence) 역시 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리통에 대한 보다 명확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으며, 여기서 통증이란 단순히 약간의 불편감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두통, 고열과 같은 의학적 증상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1)

        ○ 현재 생리휴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잠비아 정도로 소수에 그치는 수준이다. 몇 년 전 이웃 국가인 이탈리아도 3일 유급 생리휴가 법안이 상정되었으나 추진되지 못한 채 수포로 돌아간 바 있다. 이번 스페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법안에 포함된 생리휴가제는 그 내용과 정부의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법으로 제정되기 위해서는 하원과 상원을 통과해야 한다. 본 법안은 의회의 최종 의결을 거쳐야 하며, 보통 수개월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안에 이번 법안이 제정될 확률은 다소 희박하다. 그러나 우선 생리휴가를 법제화하고자 한 스페인 정부의 노력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발전했으며, 만약 의회를 통과하여 법으로 제정될 경우 스페인은 유럽에서 생리휴가제를 도입하는 첫 국가로 기록될 전망이다. 

         

        1) 평등·반(反)성범죄부(Secretariat of State for Equality and against Gender Violence)는 평등부(Ministry of Equality) 산하 부서이다. 

         


        < 참고자료>
        ■ Bloomberg(2022.5.17.)“Plan to Grant Paid Leave for Period Pain Stirs Tensions in Spain”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2-05-17/plan-to-grant-paid-leave-for-period-pain-stirs-tensions-in-spain#xj4y7vzkg (접속일: 2022.6.22.).
        ■ Catalan News(2022.5.17.) "Spain approves menstrual leave and abortion for over 16s without parental consent bill" https://www.catalannews.com/highlights/item/spain-approves-menstrual-leave-and-abortion-for-over-16s-without-parental-consent-bill-2 (접속일: 2022.6.22.).
        ■ DW(2022.5.17.) "Spain: Cabinet approves menstrual leave bill" https://www.dw.com/en/spain-cabinet-approves-menstrual-leave-bill/a-61830181 (접속일: 2022.6.22.). 
        ■ Euronews(2022.5.17.) "Spain approves plans to become the first European country to introduce paid 'menstrual leave'" https://www.euronews.com/next/2022/05/17/spain-set-to-become-the-first-european-country-to-introduce-a-3-day-menstrual-leave-for-wo (접속일: 2022.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