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정부, 직장 내 임금 열람 허용하는 법안 추진
곽서희 Erasmus University Rotterdam 박사과정
- 최근 핀란드 정부는 근로자가 같은 직장 내 동료의 임금을 확인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 초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근로자가 임금에서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 경우, 직장 측에 의사를 밝히고 본인의 주변 동료들이 받는 임금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안을 기획하게 된 취지 중 하나는 바로 남녀 근로자 간 임금격차 감소다.
- 사실 핀란드에서는 매년 11월 첫 업무일, 국민 누구든 원하면 특정 납세자의 수입과 세금 내역을 열람할 수 있다. 일명 ‘질투하는 날’이라는 명칭을 얻기도 했는데, 평범한 본인의 이웃, 직장 동료, 또는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 기업인 등에 이르기까지 본인이 알고 싶은 사람의 소득을 열람하고 싶다고 국세청에 신청하면 확인할 수 있다. 비과세 소득, 기업 소득 감면 같은 부분까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기본적인 연수입, 금융 자산 등의 내역을 열람할 수 있다. 실제로 언론사 기자들은 한 해 동안 가장 수입이 높았던 사람, 유명인사의 소득 등 정보를 열람하고 보도하기 위해 정보열람이 가능한 날 이른 아침부터 국세청 앞에 긴 줄을 형성하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 매우 사적인 개인정보임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정부는 투명성이라는 가치 차원에서 매년 11월 이와 같은 정책을 펴왔다. 이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투명성 제고보다 가십거리, 심리적인 경쟁심 유발 혹은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 최근 발표한 핀란드 정부의 법안 추진 계획의 경우 위 소개한 소득열람 및 공개는 1년에 한 번, 이벤트와 같이 매년 한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므로. 앞으로 보다 지속적으로 같은 직장 내에서 근로자들의 임금 내역을 확인하여 본인이 차별받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OECD에서 발표하는 성별 임금 격차 통계에 따르면 핀란드의 경우 여성 근로자는 남성 근로자보다 17.2% 임금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2019년 데이터 기준), 하위권을 기록했다. OECD 회원국들 평균 12.5%보다도 높다(2019년 데이터 기준). 노르웨이 8위, 덴마크 9위, 스웨덴은 12위로, 이웃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도 핀란드의 남녀임금 격차 문제는 주목할 만한 수준이다. 핀란드 내 평등 옴부즈만(Finnish Equality Ombudsman) 2018년 보고서는 남녀임금 격차 문제의 원인으로 성별 직종분리 경향이 아직 만연하다는 점,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적다는 점, 여성이 승진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낮은 점 등을 지적했다.
- 2016년부터 핀란드 정부는 고용주연합회, 노동조합들과 협력하여 평등임금프로그램(Equal Pay Programme)을 추진해왔다. 평등임금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성별에 기반을 둔 직종분리 지양, 성별 임금 격차 감소, 임금 지급 시스템 개선, 여성의 경력개발 지원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핀란드는 1986년 제정되고 2016년 개정된 남녀평등법(Act on Equality between Women and Men )이 제정되어 있으며 본래 법 테두리 안에서 남녀 고용 및 임금에서의 평등을 포함하여 명시하고 있다.
- 하지만 실제로 법안이 제정되는 데는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이 발표된 뒤 노동조합, 고용주 연합회 양측 모두 비판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그 비판 배경은 다소 상이한데, 우선 노동조합들은 현 법안보다 보다 강력한 임금 투명성 제고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고용주 연합회는 현 법안이 직장 내 갈등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키우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노동조합들과 평등 옴부즈만 측은 이미 지난 세번의 정부 임기동안 충분한 사전 연구가 이루어졌고, 이제는 법안을 통과시켜 실질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때라는 입장이다. 한 노동조합의 대표는 이번 법안을 두고 "임금격차 문제를 해소하려면 태도가 먼저 바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태도와 문화를 바꾸게끔 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이번 법안이 상정된 이후 핀란드의 주요 고용주들이 회원으로 있는 연합회인 핀란드산업연합회(Confederation of Finnish Industries, EK)는 법안에 반대하면서, 기존에 참여하고 있던 의회 내 임금 투명성 실무회의(working group)에서 탈퇴했다. 핀란드산업연합회는 핀란드 내 경제단체 중 가장 큰 단체로, 20여 개 연합, 15,300여 기업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그중 96%가 중소기업이다. 그리고 회원 기업에 고용된 근로자만 9만여 명에 달한다. 산업연합회의 한 선임 법률고문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개개인 근로자의 임금 세부내역 공개를 의무화하면 근로문화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산나 마린(Sanna Marin) 총리가 이끄는 중도 보수 5개 정당 연합정부로 조직된 핀란드 정부는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이번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태도다. 토마스 블롬퀴스트(Thomas Blomqvist) 평등정책 장관(Equality Minister)은 한 언론사를 통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주요 중점방향 중 하나가 불평등한 임금 격차 감소”라고 밝히며, 2023년 4월 선거 전에 본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법안 초안이 마련된 이후 여러 이견을 조율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으며, 계속 계획되었던 세부적인 절차 추진이 연기되고 있다. 블롬퀴스트 장관은 이번 정부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 핀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직장 내 동료 근로자들의 임금 내역 열람 허용은 근로자 개인적으로도, 기업으로서도 매우 민감한 주제이다. 따라서 투명성 제고 및 임금 격차 해소라는 대의와 개인정보라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고용주, 노동조합 등 각기 다른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사회적인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점이 과제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Confederation of Finnish Industries(핀란드산업연합회, EK), https://ek.fi/en/ (접속일: 2021.12.21.).
■ OECD, "Gender wage gap," https://data.oecd.org/earnwage/gender-wage-gap.htm (접속일: 2021.12.21.).
■ Reuters(2021.11.11.). "Finland plans to let workers see colleagues’ salaries to close gender pay gap," https://www.reuters.com/business/finland-plans-let-workers-see-colleagues-salaries-close-gender-pay-gap-2021-11-11/ (접속일: 2021.12.21.).
■ The New York Times(2018), "Happy ‘National Jealousy Day’! Finland Bares Its Citizens’ Taxes," (접속일: 2021.12.21.).
■ https://www.nytimes.com/2018/11/01/world/europe/finland-national-jealousy-day.html
■ Yle(2021.11.12.), "Union calls for salary transparency to tackle Finland's gender pay gap", https://yle.fi/news/3-12186025 (접속일: 2021.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