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성폭력 피의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 정책 - 경찰과 검찰을 중심으로
        등록일 2021-06-30

        영국의 성폭력 피의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 정책  - 경찰과 검찰을 중심으로
         

        황수영 브리스톨대학교 공공정책 석사

        ○ 영국 정부가 성폭력 피해자 (rape victim)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영국 내무성(Home Office)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경찰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 중 1.6%만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아 성폭력 피의자가 처벌받는 비율이 미미하다. 이와 함께 경찰에 사건을 접수한 성폭력 피해자 절반가량이 수사가 시작된 뒤 형사 소송을 철회할 만큼 수사 과정에서 지쳐 가해자 처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통계가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앞으로 성폭력 사건이 기소되는 비율을 높여 더 많은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본론에서는 영국의 연도별 성폭력 사건 기소 건수와 성폭행 사건 경찰 신고 현황 등 통계와 함께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형사 소송을 철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살펴본다. 이후 영국 정부가 내놓은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을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 영국 성폭력 사건 검찰 기소, 4년 만에 약 20% 감소
         - 영국은 2016년을 기점으로 검찰이 기소하는 성폭력 사건 건수가 꾸준히 감소했다. 영국 검찰 (Crown Prosecution Service)가 2019년 발간한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 보고서 (Violence Against Women and Girls Report, 2018-2019)’에 따르면, 2016년 68,462건이었던 유죄 인정 (Guilty pleas) 건수가 꾸준히 감소해 2019년에는 55,331건으로 4년 만에 19% 떨어졌다.
         - 검찰의 사건 기소 건수가 중요한 이유는 검찰의 기소가 있어야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경찰이 성폭력 사건을 수사해 검찰에 넘기면 검찰은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때만 사건을 기소해 법원으로 넘긴다. 검찰 사건 기소 건수가 낮으면 그만큼 법의 심판을 받고 처벌받는 피의자 숫자도 줄어든다. 영국 법무부 (Ministry of Justice)가 6월 18일 ‘성폭력 대응 점검 (Response to rape overhauled)’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경찰의 성폭력 사건 수사와 검찰 기소 건수를 2016년 수준으로 높이겠다”라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한 것도 2016년 이후 법원 앞에 선 성폭력 피의자 숫자가 줄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자료 출처: Crown Prosecution Service(2019.09.12.), Violence Against Women and Girls Report, 2018-2019.>

        ○ 소송 과정이 고통스러워 포기하는 피해자들
         - 성폭력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한 뒤 수사 과정에서 형사 소송을 철회하는 것도 검찰의 성폭력 사건 기소 건수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영국 정부가 올해 6월 발간한 보고서 ‘The end-to-end rape review report on findings and actions’에 따르면, 경찰에 신고된 전체 성폭력 사건 중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사건 진행을 철회해 수사가 중단된 비율이 2016년엔 42%였지만, 2019년에는 57%로 15% 늘었다. 성폭력 피해자 두 명 중 한 명꼴로 피의자가 법원의 심판을 받기 전에 소송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2019년 3월부터 2년 넘게 공을 들인 이 보고서는 성폭력 사건 발생 건수, 검찰의 기소 건수 등 다양한 통계와 피해자 인터뷰 등을 통해 법원의 판결을 받는 성폭력 사건 건수가 2016년 이후 줄어든 이유를 분석했다.
         - 형사 사건 피해자와 증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독립 기관인 영국피해자기구 (The Victims’Commissioner for England and Wales)는 2019년 8월, 피해자가 사건 수사와 형사 소송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개인 정보 유출 우려가 소송을 철회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영국 피해자기구는 2016년 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성폭력 피해자 신고 센터인 ‘Rape Crisis’를 통해 경찰에 신고된 사건 중 수사 과정에서 소송을 철회한 사건 521건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소송을 철회한 경험이 있는 전체 응답자 중 26%는 “형사법 체계에 따라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too distressing)”, 21%는 “학교나 고용 정보, 부정적인 언론 보도, 병원 기록 등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것이 두려워서” 소송을 철회했다고 답했다. 영국 피해자기구는 “이 설문 조사 결과는 피해자들이 형사법 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정부가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현실적인 지원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피해자들이 소송 진행 과정에서 지쳐 포기하는 일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영국 정부의 대책은? 사건 기록표와 소테리아 작전 
         -  영국 정부도 사법 체계가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실패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대법관(Lord Chancellor)이자 법무부 장관인 로버트 버클랜드는 6월 18일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법 체계의) 구조적 실패 때문에 정당한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서 “우리는 이에 대해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피해자 지원 강화, 철저한 사건 수사, 강력한 기소 등을 통해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사과했다.
         -  정부가 내놓은 주요 대책은 6개월 주기로 발간하는 사건 기록표(scorecards)다. 사건 기록표는 성폭력 수사 시의성, 피해자의 수사 참여 정도, 사건의 신빙성 등 구체적인 척도를 바탕으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 및 법원 판결 결과 등을 점검하고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키트 말하우스 범죄치안부 차관 (Minister for Crime and Policing)이 성폭력 관련 업무를 별도로 담당해 관리 감독하고, 피해자 기구, 가정폭력기구, 피해자 그룹, 형사 사법 기관과 매달 회의를 연다.
         - 이와 함께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 대책도 논의되고 있다. 앞서 언급된 영국 정부의 보고서 ‘The end-to-end rape review report on findings and actions’는 경찰과 검찰이 성폭력 사건을 수사할 때 피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이 담겨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휴대전화나 문자 메시지 등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대화 기록 전체를 ‘디지털 수색 (digital strip search)’해서 안 되며, 사건과 관련이 증거만 법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음.
        · 경찰은 어떤 경우에라도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24시간 안에 돌려줘야 하고, 그 동안 피해자에게 임시로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를 제공해야 함.
        · Independent Sexual Violence Advisors (ISVA) 등을 통해 피해자에게 심리 상담 서비스 제공. (ISVA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경찰 조사, 피해자 심리 상담, 피해자가 원하면 사회 복지 정책, 주거 지원까지 연결하는 폭넓은 임무를 수행하는 폭력 피해자 전문 상담가다)
        · 첫 수사부터 법원 판결까지 피해자의 알 권리를 위해 모든 정보 제공
         -  또한, 영국 정부는 내년부터 파일럿 정책인 ‘소테리아 작전 (Operation Soteria)을 실행한다. 소테리아 작전이란 경찰과 검찰이 초동 수사를 할 때 수사관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성폭행 사건을 신고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피의자의 반복된 범죄 행위나 수상한 행동에 집중하는 수사 모델이다. 영국 정부는 ‘The end-to-end rape review report on findings and actions’ 보고서에서 “6개월간 소테리아 작전을 실행해 성공할 경우 경찰과 검찰 전체의 새로운 수사 모델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 영국 정부는 지난 4년간 검찰이 기소하는 성폭력 사건 숫자가 20% 가까이 감소해 성폭력 가해자에게 적절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 두 명 중 한 명꼴로 피의자가 법원의 심판을 받기 전에 소송을 포기하고 있어 피해자 중심의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영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사법 체계가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피의자 처벌에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한 만큼 새롭게 내놓은 사건 기록표, 소테리아 작전 같은 정책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 GOV.UK(2021.06.18.), “Response to rape overhauled”, https://www.gov.uk/government/news/response-to-rape-overhauled  (접속일: 2021.06.23.)
        ■ The Guardian(2021.06.17.), “Ministers apologise to rape victims and promise overhaul of system”,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21/jun/17/ministers-apologise-to-rape-victims-and-promise-reform-in-review (접속일: 2021.06.23.)
        ■ BBC(2021.6.20.), “Why are rape prosecutions failing?”, https://www.bbc.com/news/uk-48095118 (접속일: 2021.06.23.)
        ■ Crown Prosecution Service(2019.09.12.), “ Violence Against Women and Girls Report, 2018-2019”, https://www.cps.gov.uk/sites/default/files/documents/publications/cps-vawg-report-2019.pdf (접속일: 2021.06.23.)
        ■ HM Government(2021.06.18.), “ The end-to-end rape review report on findings and actions”,  https://assets.publishing.service.gov.uk/government/uploads/system/uploads/attachment_data/file/994816/end-to-end-rape-review-report.pdf (접속일: 2021.06.23.)
        ■ The Victims’ Commissioner for England and Wales(2019.08.15.) “VC analysis of victims’ reasons for withdrawing sexual offence complaints”, https://s3-eu-west-2.amazonaws.com/victcomm2-prod-storage-119w3o4kq2z48/uploads/2019/08/OVC-analysis-victims-complaints-withdrawal.pdf (접속일: 2021.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