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코로나19 위기 속 폭력피해여성 지원 현황
곽서희 Erasmus University Rotterdam 박사과정
□ 코로나19와 네덜란드의 여성폭력 피해실태
○ 네덜란드 통계청(CBS)은 2020년 3월 초부터 4월말까지 가정폭력 및 성폭력 실태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해당 설문조사는 2020년 3월 실시되었고 지난 12월간의 경험을 묻는 설문조사였던 반면, 코로나19 팬데믹이 네덜란드에서는 2020년 2월경부터 본격적으로 확산 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밝힌다. 시점을 고려할 때, 응답 내용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변화만을 전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시점이 일부 겹치므로 어느 정도 반영되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고, 해당 주제에 대한 가장 최근 통계 자료이므로 본 원고에서 다루었다. 통계청에서는 네덜란드 16세 이상 인구 중 10만 명을 무작위 표본으로 선정하여 설문조사 협조 공문을 우편으로 발송했다. 그 중 30,459명이 설문조사를 완료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31%가 집에서 언어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고, 8.3%가 지난 12개월간 가정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가정폭력이나 성적(sexual) 폭력을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27%는 정신적인 문제를 겪었고, 7%가 신체적인 문제를 겪었다고 응답했다.
○ 네덜란드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2021년 2월 중순 기준 약 2~3천 수준이다. 확진자 수가 한때 1만여 명을 웃돌았던 것을 고려하면 감소했지만, 총인구수가 1,700만 명 정도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하반기부터 네덜란드 정부는 매우 강도 높은 봉쇄(lockdown)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병원, 슈퍼마켓, 약국 같은 필수업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이러한 규제는 정부나 민간 기관들의 각종 정책 및 사업 이행에도 불가피한 영향을 미쳤으며, 폭력피해 여성 대상 서비스도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국가의 거의 모든 경제, 사회 활동 및 서비스가 비대면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 네덜란드의 폭력피해여성 지원정책 현황
○ 현재 네덜란드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고려하여 폭력 피해 여성 지원과 관련해 새롭게 발표한 대책은 없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가정폭력 피해를 당하여도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인지하고 2020년 5월, '마스크19(mask 19)' 코드 프로젝트를 전국적으로 실시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 가정폭력 피해자는 약국에 가서 '마스크19(mask 19)'라는 단어를 언급하여 약사나 직원에게 말해서 가정폭력 사실을 알릴 수 있다. 코로나19로 계속 집에 가해자와 머무는 환경에서 전화로 신고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일종의 도움 요청 코드로, 가정폭력 피해자가 만약 혼자 약국에 왔다 약사는 당사자를 따로 약국 내 분리된 방 안으로 불러 전문 기관인 Veilig Thuis로 전화하도록 도와준다. 만약 피해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 약국에 온 상황인 경우, 약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가정폭력 피해자가 있음을 알린다. 이와 같은‘마스크19’코드 프로젝트는 이미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 여러 국가들도 실시한 프로젝트로, 네덜란드 내에서는 정부와 전국 약국 연합(Royal Dutch Pharmacists Association, Koninklijke Nederlandse Maatschappij ter bevordering der Pharmacie-KNMP)이 합의하여 실시하게 되었다.
○ 또한 보건복지체육부(Ministry of Health, Welfare and Sport)와 사법보안부(Ministry of Justice and Security)는 2020년 4월 말, 전국적으로 가정폭력 근절 캠페인을 실시했다. 정부는 영상을 제작하여 텔레비전, 라디오, 온라인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배포했다. 해당 영상은 "당신이 행동하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워 가정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고 피해자나 목격자의 신고를 독려했다.
○ 네덜란드어로 ‘안전한 집에서’이라는 뜻인 Veilig Thuis는 배우자, 아동, 노인 등 가정 내 다양한 유형의 폭력 관련 서비스를 아우르는 정부 운영 기관으로, 피해자와 처음 상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해 주는 통합 창구기능을 맡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 전국적으로 26개 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네덜란드 지자체 당국에는 담당자(contact point)가 있으며 Veilig Thuis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 웹사이트에서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도움이 필요한 경우 Veilig Thuis로 연락하라고 공식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물론 폭력의 강도가 매우 높아 위험한 긴급 상황에는 경찰 측에 바로 신고할 수 있다.
○ 또한 Veilig Thuis는 법적으로 폭력 의심 신고 접수, 폭력이나 학대 여부 초기 조사 및 평가, 후속조치 실시 의무가 있다. 피해자 뿐만 아니라 상담을 받고 싶은 가해자, 목격자, 관련 분야 전문가에게도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해 주거나 제공한다. Veilig Thuis는 익명으로 이용 가능한 무료 핫라인 전화(24시간 연중무휴) 및 온라인 채팅 상담 서비스(평일 9-17시)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 채팅 상담 서비스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작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하게 된 것이다. Veilig Thuis에 연락하면 우선 직원이 발신자로부터 상황 설명을 듣고, 피해자가 집에 머물러도 되는지와 같은 피해자 안전 여부를 판단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 관련 당국으로 연계하고, 아동 학대인 경우 지역 돌봄 서비스 기관과 같이 필요한 곳으로 연계해준다.
○ 2021년 3월, Veilig Thuis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분야 관계자, 자원봉사자, 혹은 가정폭력 피해(추정) 대상 가족이나 친구 등이 포괄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2페이지짜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가이드라인은 기관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는데,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대응 방법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전화, 메신저 등을 활용하여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확인하고 당사자의 불안감을 낮출 수 있도록 돕는다; 2) 일상에서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갖도록 돕고, 그 시간대에는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파악한다; 3)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인지 알아보고 그 위험성이 더 높아지기 전에 비상시 바로 당사자와 연락 가능한 방법 등을 미리 마련 한다; 4) 어떻게 하는게 좋은지 모르겠을 때는 Veilig Thuis에 전화하여 상담을 받도록 한다.
○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대면 정책 이행이나 서비스에 상당한 제약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가정폭력 피해가 증가하거나 피해자가 신속한 도움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문제를 인지하고, 시의적절한 프로젝트나 캠페인을 통해 피해자나 목격자의 적극적인 대응을 장려하고 있다. 또한 정부 운영 기관을 활용하여 온라인 비대면 채팅서비스를 도입함으로써, 비대면으로도 가정폭력 피해 상담 및 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참고자료>
■ NL Times (2020.04.25), "Video: Campaign against domestic abuse launched with "tensions rising" at home," https://nltimes.nl/2020/04/25/video-campaign-domestic-abuse-launched-tensions-rising-home (접속일: 2021.02.16.)
■ Veilig Thuis, https://veiligthuis.nl/ (접속일: 2021.02.16.)
■ Ik vermoed huiselijk geweld (네덜란드 정부의 가정폭력 피해 관련 전용 사이트), https://www.ikvermoedhuiselijkgeweld.nl/ (접속일: 2021.02.16.)
■ Rijksoverheid (네덜란드 정부 공식 웹사이트) (2020.05.01), "Huiselijk geweld melden via apotheek," https://www.rijksoverheid.nl/ministeries/ministerie-van-volksgezondheid-welzijn-en-sport/nieuws/2020/05/01/huiselijk-geweld-melden-via-apotheek (접속일: 2021.02.16.)
■ Statistics Netherlands (Centraal Bureau voor de Statistiek, 네덜란드 통계청), "Prevalentiemonitor: Huiselijk Geweld en Seksueel Geweld 2020," https://longreads.cbs.nl/phgsg-2020 (접속일: 2021.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