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디지털 연구 및 기기 설계 단계에 젠더· 다양성 관점 적용 요구 확산
채혜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독일 통신원
○ 지능형 개인 비서 기능을 하는 애플의 음성인식서비스 시리(siri)와 아마존의 알렉사(Alexa) 등 디지털 비서 기능 장치와 가정용 로봇이 전통적인 성별 고정관념을 고착하고 있다는 전문가들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장치들은 식료품을 주문하고, 바닥을 청소하고, 집안의 조명을 끌 수 있다. 일본의 디지털 음성 비서 히카리 아즈마(Hikari Azuma)는 낮 동안 마스터에게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보내고, 미국 섹스 로봇으로 만들어진 록시(Roxxxy)도 여러 종류의 집안일을 한다. 여성화된 AI 장치와 로봇 및 스마트 장치는 친절하고 효율적이며 사용자가 원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아내에게 맡겨져 온 가정적 책임을 지는 ‘아내 업무’를 수행하는 디지털 장치의 출현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그들은 남성 지배적인 산업에서 설계된 가상 도우미로, 과거 주부이자 백인, 중산층, 이성애 중심 문화 등을 모두 담고 있다.
○ 독일 언론은 최근 발간된 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디지털 비서 기능 장치의 성별 고정관념 문제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호주 모나시 대학의 Yolande Strengers 교수와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의 Jenny Kennedy 박사는 함께 펴낸 책 에서 시리나 알렉스 등 스마트 홈 장치에 페미니스트 리부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스마트 와이프’는 전통적으로 아내에게 맡겨져 왔던 가정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고안된 인공 지능 또는 로봇 사물을 뜻한다. 2021년부터 유럽 과학기술 분야 연구혁신 지원 프로그램인 Horizon Europe에는 지원자와 평가자가 젠더 관점을 다루고 평가해야 하는 기준이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 ‘The Smart Wife’ 연구진은 이러한 기기의 디자인이 구식이며 과거 성별 고정관념을 다시 새겨 넣어 성평등을 후퇴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기기들은 여성 형태를 띠고 있으며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전통적인 여성 작업을 수행하도록 설계돼 있다”며 “그런 점에서 많은 이들이 기기를 이용하면서 무의식적으로 편안하게 느끼며 이는 상업적 전략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전히 여성이 가사 일을 수행하지만, 남성이 주로 가정용 디지털 기기를 관리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했다.
○ 연구진이 말하는 디지털 장치에 대한 페미니스트 리부트는 장치를 이성애 중심의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도록 재설계하는 일이다.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의 젠더 감수성과 다양성을 향상하고, 장치에 숨겨진 고정관념을 드러내기 위해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방법이다. 이들은 기계가 어떻게 설계되고 어떤 방법으로 성격이나 개성을 만들어내는지 들여다보는 것뿐만 아니라, 미디어에서 여성 형태를 띠고 있는 기기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우리는 종종 이런 디지털 기기를 만드는 회사보다 여성 형태를 띠고 있는 장치를 비난하는 방식과 그것이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본다”고 전했다.
○ ‘The Smart Wife’연구진의 페미니스트 리부트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유럽연합위원회(The European Commission)의 새로운 정책이 있다. 유럽연합위원회의 연구혁신 지원 프로그램인 Horizon Europe 펀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지원자와 평가자에게 새로운 요건으로 ‘젠더 차원에서의 고려’를 도입한 것이다. Horizon Europe는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지식과 기술 창출, 국제 교류 확대, 경제 성장 및 일자리 창출 등의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연합위원회의 마리야 가브리엘은 위원회 발표 자료에서 “연구와 혁신 분야에서 성별과 젠더 기반 분석이 이뤄지고 인종과 연령, 장애 등과 같은 여러 사회적 요인을 고려하는 것은 우수한 연구를 생산하는데 주요한 이슈”라고 말했다. 성별 및 젠더 차원에서 분석이 요구되는 연구 영역은 건강, 도시 계획, 기후 변화, AI와 얼굴 인식, 가상 비서 및 소셜 로봇 등이다. 그렇다면 Horizon Europe 프로그램에서 지원자와 평가자는 어떻게 젠더 관점을 다루고 평가해야 하는가. 이는 다음과 같다.
○ 연구 및 혁신 콘텐츠에서의 젠더 관점
- 연구 결과가 여성과 남성 그룹에 다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연구 주제는 젠더와 관련된 연구 작업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펀딩 지원자는 성별 또는 젠더와 관련한 특정 작업을 제안서 일부에 포함해야 한다. 이에 따라 평가자는 제안서에서 성별 및 젠더 분석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영향 기준에 따라 점수를 부여한다. ‘연구 및 혁신 활동’과 ‘혁신 활동’ 분야 평가 하위 기준에 ‘젠더 차원’이 명시되어 있으므로 평가자는 연구 및 혁신 콘텐츠의 우수성 평가를 할 때 젠더 관점에서 이를 고려해 평가한다.
○ 연구팀의 성별 균형
- Horizon Europe은 지원자에게 작업 과정에 있는 연구 및 혁신팀 내에서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를 장려하고 특히 남녀의 균형 잡힌 참여가 보장되도록 관리 구조 형성하는 것을 권장한다. 다른 요인과 함께 ‘성별 균형’은 각 기준에서 동일한 점수를 가진 제안 중 우선순위를 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동일한 점수를 가진 제안서가 작업 프로그램 범위 또는 할당된 예산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지정할 수 없는 경우 컨소시엄팀의 ‘성별 균형’을 따져 순위를 매긴다. 여기서 지원자는 제안된 연구와 혁신 활동을 수행할 주된 책임이 있는 사람의 성별을 지정해야 한다.
○ 무의식적인 젠더 편향 방지
- 성별 고정관념은 여성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과소평가와 같은 무의식적인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전문가는 평가 과정에서 무의식적인 성별 편견의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 모든 제안서는 지원자의 출신, 정체성 및 성별 등과 관계없이 공평하게 평가된다.
○ 유럽연합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The Smart Wife’ 연구진은 중요한 새 조치이며, 디지털 산업 분야 외에도 보건, 기후, 에너지, 혁신 등 모든 분야에 젠더뿐만 아니라 다양성 관점을 고려하는 제도가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디지털 제품을 설계할 때도 이미 기기를 구축한 다음 젠더와 다양성 관련 팀이 참여하여 수정 및 변경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다양성과 젠더 관점으로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현재 사용 중인 장치에 한해서는 사용자에게 설계 디자인 과정을 알려주고 그들이 어떤 종류의 표현(예를 들어 목소리)을 사용할 것인지 검증하는 과정을 도입하는 것이 재부팅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참고자료>
■ The European Commission(2019.9.6.), “How should gender be addressed and evaluated in Horizon 2020 proposals?”,
https://ec.europa.eu/info/funding-tenders/opportunities/portal/screen/support/faq/977 (접속일: 2021.1.19.)
■ ZDNET(2020.11.3.), “The Smart Wife, book review: A feminist take on smart home tech”,
https://www.zdnet.com/article/the-smart-wife-book-review-a-feminist-take-on-smart-home-tech/ (접속일: 2021.1.19.)
■ DW(2020.12.17.), “The Smart Wife: Is your home voice assistant sexist?”
https://www.dw.com/en/the-smart-wife-is-your-home-voice-assistant-sexist/a-55970209 (접속일: 202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