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주 의회 남녀동등구성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비판 확산
채혜원 독일 통신원
- 2019년은 독일에서 의회를 남녀 동수로 구성하는 ‘남녀동등구성법(Paritätsgesetz)’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였다. 2019년 2월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의회가 의회를 남녀 동수로 구성하는 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브란덴부르크주와 튀링겐주 의회에서는 남녀동등구성법이 통과됐다. 남녀동등구성법이 시행되면 주 의회 선거에서 각 정당은 후보자 명단을 남녀 동수로 정해야 한다. 주 의회 정당별 선거위원회는 남성과 여성 별도의 선거 후보자 명단을 작성하고 이후 남녀 같은 수로 후보자 목록을 최종 작성하게 된다.
- 하지만 극우 정당인 국가민주당(NPD)과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정당이 소송을 제기했고, 2020년 10월 브란덴부르크주 헌법재판소는 남녀동등구성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극우 정당은 이 법이 남성을 차별하며, 여성 의원 수가 적어 쿼터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후보자 명단에 남녀 동수를 요구하면 특정 후보가 배제될 수 있으며, 성별 비율이 불균형한 정당의 경우 남녀 동일 후보 목록을 작성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만약 브란덴부르크주에서 남녀동등구성법이 최종 시행하는 것으로 결정 났다면 오는 2024년에 주 의회의 모든 정당은 의원 후보자 명단에서 남녀 수를 동등하게 구성했을 것이다.
- 그런데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다. 브란덴부르크주 의회 의장인 울리케 리트케 사회민주당(SPD) 의원은 “여성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며, 이들이 의회 후보자 명단에 동등하게 오르는 것을 필수라고 보는 남녀동등구성법을 찬성한다”고 말했다. 주 의회 변호인도 브란덴부르크주는 헌법에 따라 성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 브란덴부르크주에 앞서 튀링겐(Thüringen)주의 의회에서도 남녀동등구성법을 통과시켰지만 1년만인 2020년 7월, 튀링겐주 헌법재판소 역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사회민주당(SPD)과 좌파당(Linke), 녹색당(Grünen)이 함께 남녀동등구성법 시행을 추진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법이 유권자의 자유와 평등에 영향을 끼친다고 발표했다. 좌파당의 수잔나 헤니그-웰소우 의원은 “헌법재판소 결정은 정치와 의회에서 여성의 동등한 참여가 갖는 의의를 부정했으며, 남녀동등구성법은 민주주의에 대한 어떠한 제한의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프란치스카 기파이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사회민주당 의원들도 다른 주에서 남녀동등구성법 시행을 이어가기 위해 어느 정도 헌법 수정이 가능한지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두 주정부의 헌법재판소 결정이 부정적으로 나긴 했지만, 독일에서 여성의원 비율을 늘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25년까지 기독민주당(CDU)의 여성의원 비율을 50%까지 올리기 위해 여성 쿼터 비율을 증가시킬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기독민주당은 메르켈 총리의 제안으로 당의 내부 규칙 초안을 담당하는 위원회에서 새로운 여성 쿼터제를 도입하기로 했으며, 오는 12월에 열리는 정당 전체 회의에서 당원들의 승인을 받으면 2021년부터 기독민주당 소속 의회 의원과 정부 인사 비율의 최소 30%를 여성으로 채울 계획이다. 기독민주당은 여성의원 비율을 2023년 40%, 2025년에는 50%로 점진적으로 높여갈 예정이다. 독일 언론 도이치벨레(DW)는 연방의회와 주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기독민주당이 지금까지 여성 할당제 시행을 꺼려왔지만, 이번에 추진 중인 새로운 규정을 통과시키면 독일 정치 전반에 성평등과 관련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독일의 연방의회나 주정부 의회를 살펴보면 여성의원 비율은 여전히 낮은 상태다. 2017년 연방의회 선거 결과를 보면, 총 709석의 의석 수 중 남성 의원은 491석, 여성의원은 218석을 차지했다. 정당별 여성의원 비율을 살펴보면 녹색당과 좌파당이 58%과 54%로 가장 높고, 사회민주당이 42%로 뒤를 이었다. 기독민주당은 약 24%에 머물고 있으며, 자유민주당(29%)과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13%)의 여성의원 비율도 낮게 나타났다.
- 현재 독일 여성의 정치참여는 정당에서 자발적으로 운영 중인 여성 할당제에 의존하고 있다. 1986년 녹색당이 처음으로 여성 할당제 50%를 도입했으며 사회민주당은 1988년 40% 할당제를, 좌파당은 2011년부터 50% 할당제를 도입했다. 기독민주당은 1996년부터 30% 여성 할당제를 도입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며, 자유민주당과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은 여전히 여성 할당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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