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코로나19 위기 속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 요구 확대
        등록일 2020-10-30

        유럽, 코로나19 위기 속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 요구 확대

        채혜원 독일 통신원

        • 한국에서 낙태죄 정부입법예고안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코로나 위기 속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럽 국경은 물론 수많은 임신중지 관련 기관 및 병원이 폐쇄된 상태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국가에서는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모든 상황이 안전한 임신중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 독일 언론 도이치벨레(DW)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 위기로 인해 많은 임신중지 클리닉이 운영을 축소하거나 문을 닫아 여성들이 안전한 임신중지 과정에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이는 ‘위민온웹(Women on Web)’의 자료에 따른 것인데, 캐나다에서 2006년에 설립된 ‘위민온웹’은 임신중지하려는 여성에게 온라인 상담을 제공하고 약 접근이 어려운 여성에게 약을 우편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 낙태를 금지하거나 특정 상황에서만 허용하는 국가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단체이다. ‘위민온웹’에서 제공하는 임신중지 약에는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과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2018년 지침에 따르면, 이 두 약은 혼용으로 자가 투약하기에 안전하다.
        •  ‘위민온웹’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하잘 아타이는 “현재 많은 국가의 의료진과 병원이 코로나 감염 환자 치료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임신중지와 관련한 지원을 간절히 원하는 여성을 더 어렵게 만들거나 웹사이트 검열이라는 권위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위민온웹’ 접속을 차단하고 있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한국 등이다. 스페인 역시 웹 사이트 접근을 금지했는데 이에 대해 스페인 내무부 관계자는 도이치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스페인에서 온라인으로 처방약을 구매하는 것이 불법이라 이런 조치가 취해졌으며 스페인의 의료 당국 하에 관리되지 않는 의약품에 대해서는 제한조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 구글 자료에 따르면 매달 2백만 명이 ‘위민온웹’ 사이트를 방문하고 있다. 웹사이트는 22개 언어로 제공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사이트에 가장 많은 사용자가 접속한 나라는 브라질이다. 이어 멕시코. 태국, 인도네시아, 폴란드, 미국 순으로 나타났다. 독일에서도 많은 이들이 ‘위민온웹’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태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이 많지 않은 데다 임신중지 이전의 상담 의무 규정으로 인해 낙인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이 찾고 있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독일 상담 기관 프로 파밀리아(Pro Familia)의 관계자는 “‘위민온웹’은 독일 의료 시스템에 기록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독일에 거주하는 사이트 사용자는 ‘위민온웹’을 통해 이웃 네덜란드의 의료 종사자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
        • 현재 독일에서 임신중지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거나 산모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법이다. 다만 임신중지를 원하는 임신 12주 이내 여성이 국가가 지정한 기관으로부터 상담을 받아 임신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여성의 육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경우 허용된다. 지난해 형법 219a조의 일부 개정으로 여성들은 어느 의료기관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수술 절차 등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으려면 ??관련 당국과 상담 센터, 그리고 독일 의학 협회와 상담해야 한다.
        •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목소리는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임신중지 지원 네트워크(Britain's Abortion Support Network)는 몰타와 폴란드와 같이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국가에 거주하는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국가로 여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립됐다. 네트워크 활동가들은 독일 언론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위기로 인한 여러 제한조치로 인해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이 더욱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네트워크에 따르면 국경이 폐쇄된 이후 몰타로부터 두 배 많은 전화를 받았으며, 도움을 요청한 많은 여성들이 약물이 더 이상 우편으로 도착하지 않을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유럽연합 회원국은 여성이 임신중지에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법안을 갖고 있지만, 임신중지 허용 기간은 국가별로 조금씩 다르다. 몰타는 폴란드처럼 유럽연합에서 가장 엄격한 낙태죄를 적용하고 있는 나라다.
        • 북아일랜드의 경우, 지난해 제한적으로 임신중지를 합법화했지만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거의 없는 데다 의료인에게 ‘시술 거부권’을 부여해 여성들이 안전한 임신중지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한 상태다. 이에 로빈 스완 북아일랜드 보건부 장관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 북아일랜드 여성이 영국에서 안전하게 무료로 임신중지 할 수 있는 방안을 긴급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과 북아일랜드 정부는 북아일랜드의 임신중지 의료 서비스가 안전하게 제공될 때까지 영국에서 무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결정했지만, 코로나 위기로 인한 여행 제한 조치로 어려운 상황이다.
        • 한편 폴란드는 유럽연합에서 가장 엄격한 임신중지 법안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이를 더욱 강화하는 법안을 고려하고 있어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폴란드 거리 곳곳에는 ‘정부는 여성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싸울 것’이라고 적힌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 정치인들의 비판 목소리도 높다. 바바라 노바카 의원은 “의회는 광신도들이 내놓은 임신중지 사안이 아니라 기업 파산 등으로 인해 일자리와 집을 잃고 있는 폴란드 국민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폴란드에서는 매년 약 15만 건의 불법 임신중지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폴란드인이 낙태 금지법 강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