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법원이 미성년자 집단성폭행을 성학대로 판결해 논란 확산
곽서희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대학 사회학연구기관 국제개발학 박사과정
- 2019년 11월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 고등법원은 바르셀로나 북부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파티 이후, 14세 소녀를 버려진 공장 건물로 끌고 가 집단 성폭행한 가해자 5명에게 각 10-12년형을 선고했다.
- 그런데 판결이 내려진 바로 다음 날, 법원 판결에 반대하고 법적 개정을 주장하는 시위가 개최됐다. 스페인 현행법 상 성폭행은 약 15-20년의 중형을 받는 것에 비해 이번 판결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이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법원은 피해자가 술과 약에 취해 정신이 없는 상태였고 성폭행 당시 가해자들이 그 어떤 폭력적이거나 위협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본 판결 근거로 삼아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스페인에서는 형법상 피해자가 성범죄 또는 그 위협을 당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 하며, 물리적 위협이나 폭력이 동반되지 않는 한 성폭행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 이번 판결로 스페인 사법제도에서 성범죄에 대한 인식체계가 다시 한 번 크게 화두에 오르면서 지난 2016년 비슷한 사건이자 사회적으로 큰 공분을 샀던 일명 ‘늑대떼 사건(Wolf Pack)'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 사건은 2016년 한 18세 소녀가 지역 축제에서 집단 성폭행 당한 사건을 칭하는데, 가해자들 중에는 전직 경찰, 전직 군인도 포함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건을 촬영한 영상을 '늑대떼'라고 만든 메신저 대화방에 배포하고 농담을 나누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당시 법원에서는 가해자들에게 성폭행이 아닌 성적 학대로 9년형을 선고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고, 스페인 곳곳에서 여러 차례 본 판결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정부에서는 명백하게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는 성폭행으로 정의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6월, 대법원에서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가해자 다섯 명에게 성적 학대가 아닌 성폭행 죄목으로 15년형을 선고했다.
- 아다 콜라우(Ada Colau) 바르셀로나 시장은 본인의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이번 판결은 말도 안 되는 결과라면서, 가부장적(patriarchal) 사법 제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녀는 "나는 전문판사가 아니고 가해자들이 몇 년형을 받아야 마땅한지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분명히 아는 것 한 가지는 이번 사건이 성적 학대가 아니라 바로 성폭행 사건이라는 것이다”는 의견을 덧붙이면서, 이번 판결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 스페인 내 여성 인권 활동가 및 사법 분야 전문가들 역시 관련 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스페인 여성단체인 Women's Foundation 대표인 마리사 솔레토(Marisa Soleto) 역시 본인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이번 사건은 스페인법이 개정되어야함을 여실히 드러낸 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건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현재 검찰은 법원 판결에 항소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이다. 가해자들의 혐의가 성폭행으로 변경되고, 그에 따라 보다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향후 본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과 더불어 정부에서 성폭행에 대한 법적 개정을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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