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강간죄에 합의 개념 포함하는 법안 가결
        등록일 2025-11-28

        프랑스, 강간죄에 합의 개념 포함하는 법안 가결

         

         

        곽서희, 레이든 대학교(Leiden University) 정치학과 방문연구원(Guest Researcher)
         

         

        • 최근 프랑스 의회는 강간죄 정의에 합의(consent)’ 개념을 포함하는 형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지난달 23일 하원이 강간죄 관련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29일 상원이 이를 승인하면서 개정 절차가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합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원칙을 명문화하며 제도적 변화를 공식화했다. 동 법안이 상원을 최종 통과함에 따라 프랑스는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스페인 등과 마찬가지로 비동의 강간(non-consensual rape) 개념을 법적으로 명시한 유럽 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 법안은 성폭행의 법적 정의를 기존의 폭력이나 협박의 존재 여부중심에서 합의의 부재중심으로 재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합의란 개인에게 자유롭게 주어지고, 충분히 인지된 상태에서, 구체적이고 사전에 이루어지며, 원하는 경우 철회할 수 있는 행위로 정의된다. 이는 합의 판단이 단일 기준이 아닌 상황 전체를 고려해 평가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아울러 피해자의 침묵이나 무반응만으로 합의를 추정할 수 없으며, 폭력·강요·협박 또는 기습적 행위가 수반된 성관계에는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이러한 조항은 단순히 합의라는 용어를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간죄 판단의 법적 기준을 보다 정교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 표결 과정에서는 정치적·사회적 견해 차이가 드러났다. 하원에서는 전체 의원 186명 중 155명이 찬성하고 극우정당 소속 31명이 반대했으며, 상원에서는 찬성 327, 반대 0, 기권 15명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압도적 찬성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지속되었다. 비판하는 측은 이번 개정이 개인 간 성관계를 일종의 계약 행위로 축소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극우 성향 의원들은 합의 개념이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변화 가능성이 커 실제 적용 과정에서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RN) 소속 소피 블랑(Sophie Blanc) 의원은 변호사들이 가해자의 폭력 여부보다 피해자의 몸짓··침묵을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합의 개념의 모호성을 우려했다.
        • 반면 형법 개정을 지지하는 측은 이번 개정이 피해자가 폭력이나 강압 여부를 입증하는 데 의존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가해자가 합의가 있었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책임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동 발의자인 중도진보 성향 녹색당(Europe Écologie-Les Verts, EELV)의 마리-샤를로트 가랭(Marie-Charlotte Garin) 의원은 하원 표결 이후 이번 결과는 여성주의의 승리이자 프랑스 사회 전체의 승리라며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변화를 이끌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진정한 예스(yes)”만이 유효한 동의로 인정되어야 하며, 강요나 정황상 불가피한 체념 속 수긍은 더 이상 합의로 간주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여당이자 중도우파 성향 르네상스(Renaissance) 소속 공동 발의자 베로니크 리오통(Véronique Riotton) 의원은 이번 개정이 피해자 보호와 관련해 오랫동안 존재했던 법적 공백을 메우는 역사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 이러한 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된 배경에는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 있다. 프랑스 남부의 한 소도시에 거주하던 지젤 펠리코(Gisèle Pelicot)의 전 남편과 50명의 남성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약물을 투여해 그녀를 의식 불능 상태로 만든 뒤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은 펠리코를 프랑스 성폭행 근절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의 합의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피고인 상당수는 펠리코가 합의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강간죄 성립을 부인했고, 일부 변호인은 범죄 고의가 없었다면 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전 남편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고, 다른 피고인들 역시 3~15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한 피고인의 형량이 10년으로 상향 조정되는 등 사건은 계속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 법안의 의회 최종 승인 이후 프랑스의 여러 시민단체들은 이를 중요한 법적 진전으로 평가했다. 국제앰네스티 프랑스 지부의 로라 슐만(Lola Schulmann) 젠더 정의 옹호 담당관(Gender Justice Advocacy Officer)은 이번 개정이 합의 문화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프랑스 사회 전반의 인식 제고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강간죄 사건에 관여하는 법조인과 수사기관의 인식 개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했다.
        • 그러나 제도 개정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여성 인권 단체 CIDFF(Centres d’information sur les droits des femmes et des familles)는 이번 개정이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성교육 강화, 사법 및 경찰 관계자 대상 교육 확대, 피해자 지원 단체에 대한 예산 및 인력 확충 등 정책적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제앰네스티 로라 슐만 담당관의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 슐만 담당관은 성·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진정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개정 법률의 취지에 부합하는 정책 이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고자료>

        -Amnesty International (2025.10.29) "France: ‘Historic victory’ as French law adopts consent-based definition of rape",
        https://www.amnesty.org/en/latest/news/2025/10/france-historic-victory-as-french-law-adopts-consent-based-definition-of-rape/ (접속일자: 2025.11.15.).

        -BBC (2025.10.29.) “France enshrines need for consent into rape law in wake of Gisèle Pelicot case”,
        https://www.bbc.com/news/articles/ce9d3ldgg5vo (접속일자: 2025.11.15.).

        -France 24 (2025. 10.23) "French MPs vote to define rape as any non-consensual sexual act",
        https://www.france24.com/en/france/20251023-french-mps-vote-to-define-rape-as-any-non-consensual-sexual-act (접속일자: 2025.11.15.).

        -France 24 (2025.10.29), "France enshrines consent in sexual violence law in wake of Pelicot case",
        https://www.france24.com/en/france/20251029-france-to-enshrine-consent-in-law-against-sexual-violence-in-wake-of-pelicot-case (접속일자: 2025.11.15.).

        -Le Monde (2025.10.23.) “France's Assemblee Nationale backs bill adding consent to rape law“,
        https://www.lemonde.fr/en/france/article/2025/10/23/france-s-assemblee-nationale-backs-bill-adding-consent-to-rape-law_6746711_7.html (접속일자: 2025.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