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성폭력을 공공범죄로 규정하는 법안 가결
곽서희, 레이든 대학교(Leiden University) 정치학과 방문연구원(Guest Researcher)
- 지난 7월, 포르투갈 의회는 강간을 공공범죄로 재분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존에는 형법상 강간을 ‘준공공범죄(semi-public crime)’로 분류되어,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 개시가 가능했으나, 법 개정 이후에는 피해자 외 제3자의 신고만으로도 수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본 고에서는 해당 법안의 주요 내용과 의의, 그리고 향후 입법 과정 및 쟁점을 중심으로 포르투갈의 성폭력 대응체계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 이번 법안은 야당 소수정당인 ‘블로코 데 이스크레다(Bloco de Esquerda, BE)’ 소속 마리아나 모르타구아(Mariana Mortágua) 의원이 발의하였다. 법안의 핵심은 강간을 공공범죄로 분류함으로써, 피해자 본인의 고소 없이도 누구든 범죄를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강간 피해자가 수사 개시의 부담을 전적으로 떠안지 않도록 하고, 수사기관의 개입이 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법안은 본회의 표결에서 가결되었으며, 향후 위원회 심사, 최종 본회의 재표결, 대통령 승인 및 공포 등의 절차를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모르타구아 의원은 “현 단계에서의 불필요한 대립을 피하고, 세부 논의를 통해 강력하고 통합적인 법안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 포르투갈은 그간 유럽 국가 중에서도 드물게 강간을 공공범죄로 간주하지 않은 국가였다. 이전까지 유럽 내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산마리노 공화국만이 강간을 준공공범죄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 인권 단체들은 유럽평의회의 ‘이스탄불 협약(여성에 대한 폭력 및 가정폭력 방지와 근절을 위한 협약)’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특히, 강간은 준공공범죄로 분류되어, 피해자의 고소 없이는 수사가 개시될 수 없어, 트라우마, 두려움, 사회적 낙인 등으로 인해 고소를 주저하는 피해자들이 사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구조라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이로 인해 피해자가 고소를 주저할 수 있다는 점이 함께 비판받아 왔다.
- 이번 법 개정을 통해 ①강간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제3자의 신고만으로 수사가 개시될 수 있게 되었으며, ②검찰이 피해자의 요청 없이도 수사 개시 및 기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새 규정에 따르면 목격자도 강간 사건을 신고할 수 있으며, 피해자의 고소 여부와 관계없이 즉시 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 또한 ③형법, 형사소송법, 피해자 지위법(Statute of the Victim) 등 관련 법률에도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포르투갈의 피해자 지위법은 범죄 피해자의 권리와 보호를 규정하는 법률로,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적용된다. 이 법은 피해자가 형사절차에서 겪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 2019년 포르투갈 의회는 강간의 정의를 ‘동의 없는 모든 성관계’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강간에 대한 포괄적인 법적 정의를 갖추었으나, 포르투갈 의회 내 일부 의원들과 인권 단체들은 이전 법에서는 강간이 폭력적이었다는 점을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고 규정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공격을 당하거나 강제적으로 성관계에 참여하게 된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지적해왔다. 이번 법안 논의 및 표결 과정에 역시 진통은 계속 되었다. 사회당(Socialist Party, PS)과 포르투갈 공산당(Portuguese Communist Party, PCP)은 법안 표결에서 기권했으며, 그 배경에는 피해자의 동의 없이 수사가 개시되고 기소가 진행될 경우, 피해자가 형사절차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사회당(PS) 원내대표 에우리코 브릴란치 디아스(Eurico Brilhante Dias)는 강간을 공공범죄로 규정할 경우 검찰이 더 이상 피해자와 협의하지 않고 기소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끔찍한 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사법 절차에서 통제력을 잃고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사회당(PS) 소속 이자벨 모레이라(Isabel Moreira) 의원 역시 피해자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사건의 전모가 공개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당 차원의 기권 결정과 달리 일부 사회당 의원들은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 한편, 법안을 발의한 블로코 데 이스크레다(BE)는 이번 법안과는 별도로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의 경우, ‘절차적 중단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이는 피해자의 요청과 피고인의 동의가 있고, 해당 피고인이 과거 유사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없는 경우, 검찰이 사건의 절차를 임시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는 향후 법제화 과정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 포르투갈 의회의 이번 법 개정은 유럽 내 성폭력 대응 체계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법적 구조를 개선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특히 피해자의 고소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가 가능해짐으로써, 성폭력 피해자 보호 및 처벌 실효성을 높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피해자의 자기결정권과 수사기관의 자의적 개입 사이의 균형, 2차 피해 방지, 기술적, 절차적 문제 등을 고려한 정교한 후속 입법 및 시행령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위원회 논의 과정과 실질적 시행 여부를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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