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베이비 박스(maternity package) 제도 : 변화와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등록일 2025-10-31

        핀란드 베이비 박스(maternity package) 제도
        : 변화와 지속 가능성을 중심으로

         
        윤선우, 옥스퍼드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사회정책학 박사과정
        • 핀란드 사회보험기관 켈라(Kela)2025년형 베이비 박스(maternity package)의 배포를 20248월 말부터 시작하였다. 베이비 박스는 출산을 앞둔 가정에 아기 양육에 필요한 기본적인 용품을 현물로 제공하는 패키지로, 올해 구성품은 총 38종에 이른다. 수급 대상자는 베이비 박스를 실물로 수령하거나, 해당 박스에 상응하는 비과세 현금지원금(170유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2023년 수급자 중 62%는 현물 형태의 베이비 박스를 선택했으며, 특히 첫 자녀를 출산한 가정의 경우 82%가 이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본 고에서는 1938년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베이비 박스가 핀란드의 복지시스템에서 가지는 의미와 현재까지의 변화 사항, 젠더적 함의 등을 폭넓게 살펴보고자 한다.
        • 핀란드의 베이비 박스 제도는 1938년부터 시행되어 온 대표적인 출산지원정책이자 보편적 복지정책 중 하나이다. 제도 초기에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임산부를 지원하고 유아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되었으나, 현재는 사회경제적 지위나 가족 형태와 무관하게 출산한 모든 가정에 제공되는 보편적 제도로 정착하였다. 이는 핀란드 복지국가의 보편주의적 원칙이 출산과 육아 영역에서도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켈라는 매년 부모들의 선호와 육아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여 베이비 박스 구성품을 조정하고 있다. 물품 조달 비용은 2018년 이후 줄곧 170유로 수준을 유지해왔으나, 최근 인플레이션 심화로 인해 동일 예산 내에서의 물품 구매력이 감소하였다. 이에 따라 2025년형 베이비 박스에서는 수량보다는 품질 중심의 조정이 이루어졌으며, 아기 담요, 유아용 우주복(overalls), 턱받이, 유아도서 등 실용성과 안전성을 고려한 품목들이 포함되었다. 이 같은 구성은 단순한 물품 지원을 넘어 육아 환경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 그러나 핀란드는 최근 몇 년간 출생률 감소로 인해 제도 운영에 있어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실제로 2024년 초까지는 여전히 2024년형 베이비 박스가 배포되고 있었는데, 이는 예상보다 낮은 출생률로 인해 재고가 상당수 남았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이후 3년 연속 하락하였으며, 2024년에는 사상 최저치인 1.25를 기록했다. 켈라는 매년 인구통계 예측을 바탕으로 박스 구성을 계획하고 물품을 사전 발주하고 있으나, 출산율 변동성과 예측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재고 관리와 수급 타이밍의 조정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 이에 대응하여 켈라는 베이비 박스 외관에서 연도를 식별할 수 있는 라벨을 제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도에 따라 박스가 다르다는 인식이 수급자 만족도나 형평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이다. 나아가 켈라는 어떤 해에 제공되는 베이비 박스이든 품질과 만족도가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될 수 있도록 물품의 기획과 조달 방식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이처럼 해마다 보편적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제도의 신뢰도와 수급자 만족도를 높이는 핵심 전략으로 평가된다.
        • 젠더적 관점에서 베이비 박스의 수급 방식 및 구성품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 베이비 박스는 엄마를 주요 수급자로 상정하여 설계되었으나, 최근에는 아버지의 양육 참여가 확대되며 수급자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 베이비 박스 수급자의 약 20%가 아버지였으며, 이후 이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핀란드 가정 내 양육 책임이 더 이상 특정 성별에만 귀속되지 않고, 돌봄의 성평등 실현이 점차 제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다. 또한, 박스 내 물품도 성별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젠더 중립적 디자인과 색상, 기능 중심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출생 직후부터 아동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을 최소화하고, 부모가 성별에 따른 육아방식의 차이를 두지 않도록 유도하는 상징적 메시지를 내포한다. 핀란드의 베이비 박스는 단순한 출산축하 물품을 넘어, 사회 전체가 육아를 지지하고 젠더 평등을 촉진하는 복지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 핀란드의 보편적 복지 시스템과 연계된 이 제도는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아왔으며, 캐나다, 영국, 미국 등 자유주의 복지국가(liberal welfare states) 일부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제도가 이식된 국가들에서는 그 목적과 인식, 정책적 맥락이 핀란드와는 차이를 보인다. Blair-Hamilton & Raphael(2023)의 비교연구에 따르면,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에서는 사회보장의 일환으로 베이비 박스가 설계·운영되며, 보편주의적 요소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주로 민간기업이나 미디어가 주도하여 영아 돌연사 증후군(SIDS) 예방을 중심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는 제도의 공공성보다는 개인의 책임 또는 건강 정보 전달 도구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례는 복지국가의 성격이 제도 수용 방식과 정책 목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 유사한 형태의 정책이라도 제도의 정체성과 수급자 인식은 각국의 복지모델, 정치적 담론, 젠더 규범 등에 따라 다르게 형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국내에서 유사 정책을 검토하거나 벤치마킹할 경우, 단순한 제도 모방이 아닌, 제도의 배경, 사회문화적 맥락, 젠더 정책과의 연계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 핀란드의 베이비 박스 제도는 보편적 복지의 구현, 출산 가정에 대한 실질적 지원, 성평등한 육아 문화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시사점이 크며, 출산율 하락과 사회 구조 변화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정책 운용을 위한 다양한 실험과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향후 이 제도의 변화 과정과 그에 따른 사회적 반향은 다른 국가의 가족 및 젠더 정책 수립에도 중요한 참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Denty Piawai Nastitie dari Finlandia (2025.04.12.). “”Baby Box“, Symbol of Social Security from the State for Finnish Citizens”,
        https://www.kompas.id/artikel/en-baby-box-simbol-jaminan-sosial-dari-negara-bagi-warga-finlandia (접속일자: 2025.09.27.)
        -Helsinki Times (2025.05.23.). “Finland’s 2025 baby box unveiled without condoms or lubricant”,
        https://www.helsinkitimes.fi/finland/finland-news/domestic/26954-finland-s-2025-baby-box-unveiled-without-condoms-or-lubricant.html (접속일자: 2025.09.27.)
        -Yle News (2025.08.06.). “Kela yet to distribute 2025 baby boxes amid Finland’s falling birth rate”,
        https://yle.fi/a/74-20176144 (접속일자: 2025.09.27.)
        -Helsinki Times (2025.08.06.). “No families have received Finland’s 2025 baby box due to low birth numbers”,
        https://www.helsinkitimes.fi/finland/finland-news/domestic/27602-no-families-have-received-finland-s-2025-baby-box-due-to-low-birth-numbers.html (접속일자: 2025.09.29.)
        -Yle News (2025.05.22.). “Finland’s 2025 baby box is here, minus condoms and lubricant”,
        https://yle.fi/a/74-20163413 (접속일자: 2025.09.29.)
        -Yle News (2025.08.27.). “Finland’s first 2025 baby boxes on their way to new parents”,
        https://yle.fi/a/74-20179644 (접속일자: 2025.09.29.)
        -Doreen Nicoll (2023.03.21.). “Finnish baby boxes work in tandem with progressive social policies”,
        https://rabble.ca/health/finnish-baby-boxes-work-in-tandem-with-progressive-social-policies/ (접속일자: 202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