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부, 여성살해(femicide) 법제화 초안 승인
곽서희, 레이든 대학교(Leiden University) 정치학과 강사(Lecturer)
- 지난 3월 초, 이탈리아 내각인 장관회의(Council of Ministers)는 여성살해(femicide)를 법률에 명시하는 초안 법안을 승인했다. 본 법안은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가족·출산율·평등기회부 장관, 제도혁신·규제 간소화부 장관의 공동 제안으로 상정된 것이다. 본 고에서는 해당 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 이번 법안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괴롭힘과 폭력이라는 사회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보호 시스템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안에서는 여성 살해를 새로운 형사 범죄 유형 중 하나로 명시하고자 하며, 다음과 같이 처벌 대상을 정의하고 있다.
: 여성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로서, 그 행위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자에 대한 차별 또는 증오에서 비롯된 경우, 혹은 여성의 권리와 자유, 또는 인격의 표현을 억압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경우
- 해당 법안에서는 위에 해당하는 범죄 동기와 상황은 여성 대상 폭력 사건에서 가중처벌 사유가 되며, 범죄 내용에 따라 법정형이 최소 1/3에서 최대 2/3까지 가중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살해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가해자는 최대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한 일명 레드 코드(Red Code)에 해당하는 형사 사건의 경우 검사가 반드시 피해자를 직접 심문해야 하며, 경찰에게 위임할 수 없다. 아울러 레드 코드 범죄 또는 여성 살해 피해자(또는 유가족)에게는 형 집행 과정에서도 우선적으로 금전적인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다. 즉, 채권 등록 및 집행에서 일반 피해자보다 우선순위가 보장된다.
- 레드 코드(Red Code)란 이탈리아에서 2019년 제정된 법률 제69호(가정폭력 및 성별 기반 폭력 피해자 보호에 관한 형법, 형사소송법 및 기타 조항의 개정)를 지칭한다. 레드 코드는 형법에서 다양한 범죄를 포함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데, 크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 당사자의 동의 없이 성적으로 노골적인 이미지나 영상을 유포하는 행위,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는 징역 1년에서 6년, 벌금 5,000~15,000유로에 처한다. 둘째, 피해자의 얼굴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는 행위는 징역 8년에서 14년에 처해지는 범죄에 해당하며, 해당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무기징역에 처한다. 셋째, 결혼을 강요하거나 유도하는 행위는 징역 1년에서 5년에 처하며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가중처벌이 적용된다. 넷째, 가정 내 퇴거 명령 또는 피해자 접근 금지 명령을 위반하는 행위는 6개월에서 3년의 구류형에 처한다.
- 소개한 레드 코드 외에도 본 법안에서는 가해자에게 사전 구속 조치가 내려진 경우, 구치소 수감이나 가택 연금 등의 강력한 사전 조치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형 감면이나 보상 조치 등으로 석방될 경우, 해당 사실을 통보받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리고 검사와 판사에 대한 교육 의무도 대폭 강화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기존 관련 법률에서 명시하는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전문성과 민감성 강화를 위한 의무적 연수 과정이 확대하고자 한 것이다.
- 위와 같이 이번 이탈리아 정부의 여성살해 관련 법안 승인은 이전 또는 현 파트너에 의한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분노가 이탈리아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정부가 마련한 제도적 조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탈리아가 비준한 이스탄불 협약(The Council of Europe Convention on preventing and combating violence against women and domestic violence)에 따른 국제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며, 유럽연합이 최근 채택한 2024년 지침 제1385호 및 범죄 피해자 보호 관련 지침(EU Directive 2024/1385 of the European Parliament and of the Council of 14 May 2024 on combating violence against women and domestic violence)에서 제시하는 방향과도 맥을 같이한다.
- 이탈리아는 오랜 기간 여성 대상 폭력 및 살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왔는데, 특히 2023년 11월 발생한 한 사건이 전국적으로 큰 이슈가 된 바 있다. 바로 20대 초반의 한 여대생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사건으로, 이후 수천 명의 시민들이 제도적 변화를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했고, 피해자의 장례식에는 멜로니 총리를 포함해 약 8천 명 이상이 참석했다. 가해자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 조지아 멜로니(Giorgia Meloni) 총리는 성명을 통해 “이 법안은 매우 중요한 법안으로, 여성 살해라는 범죄를 이탈리아 법체계에 독립된 범죄로 도입하고 최대 무기징역형까지 처벌하고자 한다”면서,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여성 학대, 스토킹, 성폭력, 리벤지 포르노와 같은 범죄를 보다 엄격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도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중도-좌파 야당은 이번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법안이 형사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여성대상 범죄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사회, 문화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는 크게 기여하지 못할 수 있다고 보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양원제 국가로 본 법안은 앞으로 하원과 상원에서 모두 승인을 받아야 법으로 최종 확정 및 발효된다.
참고자료
AP News (2025.3.8.). "Italy approves draft law targeting femicide with punishment of up to life in prison", https://apnews.com/article/italy-femicide-crime-life-prison-meloni-cecchettin-c253498f58502aecaf1cfb3086ee4392 (접속일: 2025.5.14.)
Italian Government (2025.3.7.). "Comunicato stampa del Consiglio dei Ministri n. 117", https://www.governo.it/it/articolo/comunicato-stampa-del-consiglio-dei-ministri-n-117/27892 (접속일: 2025.5.14.)
POLITICO Europe (2025.3.8.). "Italy approves draft law outlawing violence against women", https://www.politico.eu/article/italy-approves-draft-law-targeting-killing-of-women/ (접속일: 202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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