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응급 피임약 무상 제공: 여성의 생식 자율성 보장을 위한 진전

• 2025년 말부터 영국 전역의 여성들은 지역 약국에서 응급 피임약(emergency contraception)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보건사회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Social Care)와 영국 지역 약국(Community Pharmacy England) 간의 지원금 협의에 따라 추진되는 조치로, 약국 서비스 확대의 일환이다. 보건사회복지부는 2년간 총 6억 1,700만 파운드(약 8,000억 원)를 투입하여 지역 약국의 역할을 강화하고,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를 처음으로 응급 피임약까지 확대한다

• 여성의 생식 자율성과 응급 피임약

-응급 피임약은 일반적으로 ‘사후 피임약(Morning-after pill)’으로 불리며 피임 실패, 피임 없는 성관계, 성폭력 등의 상황에서 임신을 예방하는 약물이다.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 복용해야 하며, 복용 시점이 빠를수록 효과가 좋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여성이 다양한 이유로 이 약을 제때 구하지 못하고 있다. 흔히 “레보넬(Levonelle) 같은 응급 피임약은 이미 약국에서 살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반응이 있지만, 이는 약사의 상담이 필요한 조건부 판매로, 일반의약품처럼 선반에서 바로 구매할 수는 없다. 약사의 부재나 재고 부족, 상담 과정에서의 심리적 부담 등으로 인해 실제 구매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결국 형식적인 판매 가능성과 실질적인 접근성 사이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영국 임신 상담 서비스(British Pregnancy Advisory Service, BPAS)의 보고에 따르면, 여성들이 의무 상담 때문에 약을 구하는 것을 꺼리거나, 약국의 재고 부족과 약사의 부재로 인해 약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전체의 20%에 달한다고 한다. BPAS 환자 중 상당수는 “부끄러움 때문에 응급 피임약을 받지 못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또한, 다른 피임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응급 피임약만을 피임 수단으로 사용하는 여성은 약 33%에 불과해, 응급 피임약이 광범위하게 오용되거나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실제로는 필요할 때조차 접근하지 못하는 여성이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응급 피임약은 그 효과와 안전성 측면에서, 현재 약사나 의사 상담 없이도 구매 가능한 파라세타몰(paracetamol)이나 니코틴 대체 요법(nicotine replacement therapies) 등보다 더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응급 피임약 역시 불필요한 절차 없이 일반의약품처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정책의 주요 내용과 기대 효과

-현재 영국 국민 보건 서비스(NHS)에서는 응급 피임약을 일반의(General Practice, GP) 또는 성 건강 클리닉(Sexual Health Clinic)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지만, 지역별 정책과 예산 차이, 나이 제한 등의 제약으로 인해 많은 여성이 여전히 약값을 지불하고 약을 구입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로 인해 최대 30파운드(약 5만 6천 원)의 비용이 발생하기도 하며, 일부 지역 약국은 재정 부족으로 인해 응급 피임약 자체를 구비하고 있지 않다. 이 같은 지역 간 격차는 ‘우편번호 복불복(Postcode lottery)’이라는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보건사회복지부 장관 스티븐 키녹(Stephen Kinnock)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피임약에 대한 평등한 접근성은 여성 건강 관리에 핵심이자 공정한 사회의 초석이며, 모든 여성이 거주지나 지불 능력에 관계없이 필요할 때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치를 통해 응급 피임약에 대한 지역 간 격차가 해소되고, 여성들이 동등하게 약물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정책은 특히 긴 일반의(GP) 대기 시간, 예약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응급 피임약 복용 시점인 72시간 이내에 약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던 현실을 개선할 것으로 보인다. 성 건강 클리닉 역시 모든 지역에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아,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이 급히 방문하기 어려웠던 상황도 함께 개선될 전망이다. 신뢰도가 높고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 약국을 통해 응급 피임약을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여성의 건강권에 실질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BPAS 대표 하이디 스튜어트(Heidi Stewart)는 “정부의 무상 제공 확대와 지역 격차 해소 조치를 환영한다”며, “이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예산 배정과 약사 대상 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응급 피임약을 일반 판매 의약품(General Sales List)으로 재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미국, 스웨덴, 노르웨이처럼 약국 선반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진정한 접근권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000년에는 레보넬(Levonelle)이 전문의약품에서 약국 판매 의약품으로 전환된 전례가 있으며,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현재의 응급 피임약도 재분류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고 있다.

• 응급 피임약 무상 제공 확대는 단순한 의료 정책을 넘어, 여성의 생식 자율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는 구조적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조치는 여성들이 시간, 지역, 비용 등의 제약 없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사회적 평등과 보건 정의 실현에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응급 피임약을 일반의약품처럼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여성들은 보다 주체적으로 자신의 몸과 삶의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