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에 인간으로 살기 위하여
        저자 정동익
        발간호 제029호 통권제목 1990년 겨울호
        구분 ARTICLE 등록일 201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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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땅에 인간으로 살기 위하여 
        [한국 사회성격과 도시빈민운동], 김영석 저, 도서출판 아침, 1989. 

        정동익(전 언론인) 

        Ⅰ. 서 
        대도시의 변두리 곳곳에 불량주택 단지가 즐비해있고, 그곳에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가고 있는 도시빈민들이 있다. 도시빈민들은 흔히 말해지듯 
        게으름이나 '팔자가 사나워' 빈곤해진 것이 아니다. 도시빈민의 형성과 존재 
        자체가 이 사회 구조적 모순의 적나라한 반영인 것이며, 따라서 도시빈민의 
        존재는 한국 사회가 아직 충분하게 민주화되지 못했으며, 부의 균등화를 중심 
        내용으로 하는 경제 민주화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시키는 
        구체적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땅의 광범한 도시빈민의 형성은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계획 때부터 
        비롯되었다. 저농산물가격 정책과 수입개방정책으로 대표되는 농업정책은 농업을 
        파탄지경으로 내몰고, 이는 광범한 이농민을 결과시켰다. 물론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을 타고 무작정 상경한 이농민도 다수 존재했지만 기본적 이농 현상은 
        왜곡된 농업정책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연 60∼70만명의 이농민이 
        지속적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시로 몰리게 되었다. 

        한편 도시에 있어서 2차 산업 부문의 취업기회는 이농민에 비해 훨씬 
        협소했으며, 뿐만 아니라 저임금 정책을 주요 골간으로 했던 노동정책은 이러한 
        '풍부한 노동력 공급과잉의 노동시장'을 선호하고 나아가 조장하였다. 즉 
        노동시장에 있어 노동력 공급과잉은 필연적으로 노동자 상호간의 경쟁을 낳고 
        이는 결국 저임금 구조를 정착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정부의 저임금 정책은 노동운동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노동시장에서의 노동력 
        공급과잉 구조의 정착이라는 두개의 축으로 수행되었다. 

        따라서 광범한 이농민들은 도시에서 2차산업의 근대적 부문에 효과적으로 
        편입되지 못한 채 3차 서비스업이나 건축업, 노점상 등의 '잡직'에 취업하여 
        불안정한 생활을 영위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정상적인 거주 지역에서 살 수 
        있는 경제력이 결핍되어 무허가 집단주거지역을 형성시켜 거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제1기의 도시빈민'에 이어 계속된 이농민들의 행렬은 1기 도시빈민들이 
        철거된 이후에 새롭게 형성시킨 도시 변두리의 불량주택 지역에 거주하거나 
        아니면 일반 주택가의 지하셋방에 거주하게 되었다. 물론 취업은 기본적으로 1기 
        도시빈민과 대동소이했고 '불안정성'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오늘날 도시빈민의 삶은 분명히 전반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향상되었다. 주거 
        조건, 소득, 교육, 문화 등 제반 부분에서 명백한 향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결식 아동이 수십만명에 이르고, 국가 지원만으로 살 수밖에 없는 
        생활보호대상자가 1백만명에 넘고 있는 현실은 빈곤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빈곤이란 절대적 수준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상대적인 수준에 결정적으로 의존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다수의 도시빈민들이 불안정한 취업 조건으로 지하셋방이나 
        무허가 불량주택 지역에서 고심참담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국민의 
        불과 0.1%가 전국 사유지의 25%를 독접하면서 온갖 사치와 부귀와 수탈을 일삼고 
        있는 현실은 분명히 상대적 빈곤과 그에 따른 극심한 빈곤감을 엄청나게 
        확대하는 것이다. 

        더욱이 도시빈민의 최소한의 삶터조차도 생존 대책이 없이 무차별적으로 강제 
        철거시키는 행위는 도시빈민의 생존권을 결정적으로 악화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취업기회가 부정당한 채 임시방편적으로 하고 있는 노점의 단속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Ⅱ. 한국 사회성격과 도시빈민운동에 대한 분석 
        [한국 사회성격과 도시빈민운동]은 다년간 도시빈민 운동을 실천해온 저자가 
        그간의 운동실천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빈민 현실 및 운동에 대한 이론화를 
        시도한 역작으로 평가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사회를 식민지 반자본주의로 규정하면서, 그러한 
        사회구성체에서 필연적으로 도시빈민이 형성되어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어서 도시빈민의 비극적 현실과 이에 대한 도시빈민 대중의 힘찬 운동 및 
        투쟁을 현장 경험과 실천에 의거하여 서술하였다. 

        이 책은 저자가 밝히듯 85년도에 저자가 펴냈던 [도시빈민론]을 수정·보완 한 
        것이다. 저자는 후기에서 두 책의 차이점을 주변부자본주의론에서 
        식민지반자본주의로의 변화, 계급론의 변화, 운동론의 변화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도시빈민론]에서 도시빈민을 독자적 계급으로 파악하던 입장을 수정하여 
        상대적 독자성을 지니지만 점차 노동자 계급으로 전화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 
        사실이 두드러진다. 

        사실 도시빈민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특히 계급적 성격은 여하히 설정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그간에 학계와 빈민운동권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따라서 도시빈민의 독자적 계급론을 고수했던 저자의 입장 변화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현실적으로 도시빈민의 취업관계에서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과는 상이한 봉건적 
        고용관계가 나타나고 있으며, 그 잡단의식 또한 상이한 것이다. 농민이 노동자와 
        구별되는 논리와 마찬가지로 도시빈민도 구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만 도시빈민의 생산관계에서 나타나는 봉건성을 타파하고 그것을 근대적인 
        생산관계로 변혁시키는 도시빈민의 계급투쟁 과정에서 도시빈민은 전형적인 
        노동자계급으로 전화될 수 있을 것이며, 혹은 부분적으로 소자산 계급으로의 
        전화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그리하여 현 단계의 도시빈민 범주는 그러한 
        과정에 있는 과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이상 214쪽). 

        한편 저자는 도시빈민 운동이 노점상운동, 철거반대운동, 그리고 직업별 
        운동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이러한 운동들이 통일적으로 연대하여 더욱 발전된 
        역랑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철거반대운동은 임대주택을 슬로건으로 
        하여 도시빈민 뿐만 아니라 전체 무주택대중을 포괄하는 인간다운 주거조건을 
        쟁취해내는 운동으로 발전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책은 그간의 도시빈민 위상 및 운동에 대한 총괄적 정리를 상당한 
        정도로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식민지반자본주의 사회와 도시빈민의 존재의 필연성에 대한 이론적 
        정합성이 부족하다. 물론 이는 전반적으로 도시빈민의 위상에 대해 아직 
        충분하게 규명되지 못환 현실에 비춰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한계가 
        이책에서도 효과적으로 극복되지 못했다. 도시빈민의 위상 및 계급적 성격에 
        대한 이론적 규명의 불철저는 이론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빈민운동의 실천에 
        있어서도 상당한 지체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다음으로 운동론의 서술에 있어 국지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족민주 운동에 있어 도시빈민운동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규정이 
        부족하고 도시빈민 운동만의 '기술적, 전술적' 차원의 체계로 이뤄져 있는 
        것이다. 물론 실천적 관점을 뚜렷이 견지하고 있음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터이지만, 그러한 문제에 있어서 명확한 해명의 결여는 실천적 관점의 성과를 
        훼손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 과정에 대한 서술에 있어서 좀더 확대된 범주와 내용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사당동 철거투쟁에 대한 과도한 서술 등은 전체 체계의 평형을 
        흔들리게 하는 문제일 수 있을 정도로 비중있게 다루었는데, 물론 그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충정'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저자의 목적이 전체의 
        서술 체계에서 지나친 범주로 설정된 것이다. 

        또한 도시빈민 여성에 대한 서술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도시빈민 여성이 
        당하고 있는 고통은 엄청난 것이며, 도시빈민이 당하는 고통이 집약된 표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도시빈민의 위상 및 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유일한 책이며, 더욱이 실천가의 입장에서 현장 대중과 
        함께 투쟁하는 관점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운동의 이론화를 꾀한 점을 결코 과소 
        평가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Ⅲ. 도시빈민 여성의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봉건적 성차별과 더불어 노동력의 상품화, 나아가서 
        성의 상품화라는 조건하에 놓이게 된다. 

        도시빈민 여성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전체적으로 처해있는 위치에 
        그대로 조건지워져 있다. 그러나 도시빈민여성은 타 계층 여성보다 훨씬 
        심화되고 모순된 조건에 놓여져 있다. 

        도시빈민 여성은 도시빈민 계층의 소득 수준이 낮기 때문에 취업 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다. 남성도 하기 어려운 건축일을 저임금으로 아무런 제도적.법적 
        보호장치 없이 해야 하며, 노점상도 잦은 단속과 벌금, 구류, 강제철거 속에 
        감내해야 하고, 또한 저임금 속에 봉건적 예속의 파출부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도시빈민 여성의 현실이다. 그것은 노동 강도가 매우 높으며,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결성 등의 노동3권 보장이 전혀 결여되어 있고, 더구나 산재 처리조차 
        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조건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취업 전선에서 가혹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면서도 가사노동은 모조리 
        빈민 여성들의 몫이다. 특히 도시빈민들은 봉건적인 여성 성차별이 극심하고 
        여성들 자신도 이러한 성차별을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에 빈민 여성의 고통은 
        가중화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빈민 여성이 가외의 취업 활동을 하지 않더라고 대부분 부업일을 하고 
        있다. 부업일이란 하루종일 식사도 못하고 허리도 제대로 못펼 정도로 일해봤자 
        기껏 몇 천원 밖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빈민 여성이 가혹한 취업활동에 
        시달리면서도 도시빈민 가구의 열악한 경제적 지위와 도시빈민들의 성차별적 
        봉건 의식으로 인해 극심한 가사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실로 도시빈민 여성은 빈곤의 조건하에서 취업과 가사노동 양 측면에서 이중적 
        억압을 당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정을 온전히 책임져야 할 위치에 놓여져 있는 
        도시빈민 여성은 빈곤의 '원죄'를 온몸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가사노동, 
        취업활동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인간관계, 자녀교육 등 가정을 중심으로 한, 
        그리고 가정을 지키는 모든 일을 여성이 수행해야만 한다. 나아가 철거투쟁에 
        있어서도 빈민 여성의 참여율은 남성보다 훨씬 높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빈민 
        여성은 가히 빈민 가구의 '가정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불리울 만큼 가정내에 
        있어서의 그 역할은 지대하다. 

        그러나 빈민 여성이 스스로 가지는 봉건적 성분업 내지 성차별 의식은 빈민 
        여성을 타 계층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크게 미치지 못하게 하는 커다란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 매맞는 빈민 여성이 타 계층 여성보다 훨씬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봉건적 잔재가 얼마나 도시빈민 여성을 시달리게 하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아무튼 도시빈민 여성이 당하는 고통은 지극히 큰 것으로 되고 있다. 물론 
        이는 빈곤이 그 기본 요인이 되는 것이며, 아울러 성차별적인 봉건적.가부장제적 
        사회의 조건, 그리고 이에 따른 빈민 여성 자신들의 패배적 의식도 그 주요한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Ⅳ. 결어 
        이상에서 도시빈민의 열악한 삶의 조건을 [한국 사회성격과 도시빈민 운동]에 
        관한 서평과 함께 살펴 보았다. 

        도시빈민, 특히 빈민 여성의 삶은 이땅에서 고통으로 점철된 삶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빈곤과 억압을 낳은 사회적 모순의 반영이다. 

        이땅이 민주화되고 모든 국민들이 억압과 소외됨 없이 사는 척도는 무엇보다도 
        도시빈민 대중의 삶의 질과 양이 발전되는 데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땅에 도시빈민 대중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력은 다방면에서 실천되어야 
        하며, [한국 사회성격과 도시빈민 운동]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의 더욱 가열찬 실천 활동과 이론화작업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