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부: 시장경제체제하에서 변화하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
        저자 데니스 하트
        발간호 제028호 통권제목 1990년 가을호
        구분 ARTICLE 등록일 201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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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Ⅰ.서론 
        Ⅱ.결론 

        우리는 이상적인 시민이 되는 법과 욕망에 의한 신분상승을 소비를 통하여 
        배운다. - 로널드 버먼 - 

        성공적인 여성을 볼 때마다 내 자신이 바보스럽고 완전히 실패했다고 느낀다. 
        - 한국주부 - 

        Ⅰ. 서론 
        오늘날 한국에서는 많은 수의 기혼여성들이 주부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말이 흔히 안사람으로 통용되었다. 이는 단순한 단어의 변화라기 
        보다는 기혼 여성의 사회경제적 역할에 있어서 생겨나는 뿌리깊고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주부라는 용어는 1960년대에 여성잡지에서 공식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우에노 시즈꼬는 일본사회에 관한 논문에서 "주부란 집 지키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는 여성"이라고(주:우에노 시즈꼬(1987), "Genesis the 
        House Wife", Japan Quarterly, June, p.139.) 정의를 내렸다. 한편 안사람은 
        "집을 지키는 일 이외에 여러가지 작업, 옷감짜기, 농사일, 농산물관리 등을 
        포함한 많은 임무를 책임지고 수행하면서 고전적 가치체계와 이에 따른 규범을 
        지키도록 강요된 사람들이라고 구분하였다(주:정대현(1985), "여성해방과 
        표준어", [여성문화의 도전], 크리스찬아카데미편, p.144.). 

        이처럼 주부와 안사람 모두 여성이며 결혼한 몸이고 집에서 그들 시간의 
        대부분을 보재도록 기대되어지며 또 사실상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둘의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의 유사점은 더욱 더 깊고 
        밑바닥에 깔린 변화의 과정을 보도하는 표면적이고 인위적인 산물이다. 

        안사람은 집단 소비뿐 아니라 집단생산에서 전제가 되는 가족의 구성원중 
        중심적 존재였다. 그러나 주부는 전적으로 시장경제하에서 유래된 것으로 
        주부들의 정체감과 행동들 또한 이러한 시장경제력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런 
        차이는 오늘날 한국 주부들이 가족 구성원으로서 더 이상 중심적 존재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겠다(주:정대형, 앞 
        글, pp.142-148. "개인의 정체감을 구체화시킴으로써 의존성을 낳는 언어적 
        함정"이므로 주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주부는 현대 가정을 
        전제로 하며, 또 그 가정에 속한 남편을 전제로 한다;그러므로 주부는 자신의 
        사회적 정체감이 남편의 지위에 따라 결정되고 유지된다. 자기 자신 자체로는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수입, 레저활동, 교육, 직업, 물질적 풍요에 따라 중산층 가정을 많은 
        여성들이 선망하고 있다. 수만명의 10애 근로소녀들이 화이트칼라의 남성과 
        결혼하고픈 꿈을 가지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좋은 
        학벌과 확실한 직업을 가진 남성들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꿈을 이룬 많은 여성의 승리가 언제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산층 주부들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위치에서 혼란스럽고 공허한 감정들이 
        때론 불쾌한 감정들로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하에서의 생산의 필요성이 가족을 생산단위로 쪼개어 놓았으며, 
        이러한 생산의 필요성이 주부자체의 정의를 변형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전 산업사회 집단들의 문화 지체현상을 낳았는데 이중에서도 특히 한국여성들은 
        사회적 현실과 자신들이 추구하는 현실 사이에서 엄청난 긴장과 압력을 받고 
        있다. 오늘날 이들은 여전히 전통적 가치에 따르도록 압력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역할에서 주어지는 기능들은 그러한 옛날식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아내가 가족체계를 사회의 안전장치로서 
        기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경제구조와 현대 가족의 기능이 사회변화의 매개물이 되어온 이래 
        한국여성에게는 좌절과 스트레스를 주는 임무가 되었다. 

        1. 소비자로서의 주부 
        현대사회에서 한국여성들이 직면하게 되는 도전은 가정밖에서의 생산적 역할 
        담당이상의 것이다. 많은 수의 여성들이 노동자가 됨에 따라 시장경제의 
        비속성에 상처받기가 쉬워질 뿐 아니라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가정을 꾸려나가는 
        그들의 지위, 역할, 행동이 소비단위로서의 가정이라는 새로운 정의에 
        적응되도록 재정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자 논문에서 주부란 중요한 경제단위인 가계의 담당자로서의 그들의 
        역할때문에 "국가경제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계속해서 
        "여성은 생산된 상품의 소비자일 뿐 아니라 상품에 대한 더 나은 소비와 관리를 
        통해 사회·경제적 발전에 공헌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개선된 소비자 생활을 
        선도할 수 있기 때문에(주:신용자(1987), "소비자 운동과 여성운동", [여성연구] 
        가을호, 한국여성개발원, pp.37-40, p.234.) 여성운동이 소비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도시가족에 있어서 경제적 자립자족은 더 이상 중산층 여성의 목표일 
        수는 없는데 이는 대부분 남편만이 가족부양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주:노미혜 논문에 1985년 도시 가정의 77.6%가 남성을 경제의 제1차적 
        공헌자로 여겼다.). 

        과거의 가정내에서의 자급자족과의 정반대로 오늘날 한국여성은 훨씬 더 많은 
        소비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말로 그들 자신과 가족들의 역할을 규정하도록 재촉 
        당하고 있다. 매일같이 미디어·친구·사회가 그들에게 소비를 충동한다. 현대 
        여성은 끊임없이 자신의 새로운 神인 소비를 숭배하기 위한 물질적 순례여행을 
        한다. 그럼으로써 그녀와 가족은 자본주의 체제의 무수한 상품을 얻게되고 
        생산을 열렬히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즉각적인 만족은 얻지만 결코 
        종교사회에 대해 충만한 기쁨을 얻지 못하는 초심자가 된다. 새로운 숭배는 
        변화하는 여성의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정당성과 새로운 자아에 
        대한 定義속에서 생활의 새로운 어려움에 대한 피상적인 대답을 발견한다. 
        이러한 종교는 즉각적이고 물질적인 소비자 상품-시장의 필요성에 따라 주의깊게 
        연결되 상품들-의 계속적인 확산을 통해 그 정당성과 진실성에 대한 신속하고 
        중요한 증거를 약속한다. 훌륭한 자본주의 소비의 신봉자는 면 내세가 아닌 현재 
        이곳의 백화점에서 대답을 듣는다. 구원, 아니면 적어도 보다 작은 기적은 오직 
        끊임없이 사들이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여성은 그녀의 최첨단의 물질적 환경에 
        부응하는 물질적 구원을 얻기 위해 이러한 새로운 종교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삶을 바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대부분의 한국 여성에게는 낯선 일이다. 그것은 과거의 
        한국고유의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급속한 전화으로 전통적인 사회·문화적 제도가 익숙치 않은 
        오늘날의 제도로 바꾸어지면서 스스로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거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소농의 가정이건 일반가정이건 여성은 남편, 시아버지 심지어는 아들보다도 
        사회적으로 열등하게 여겨지고 묘사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에게 있어서 전통적 역할은 무엇이고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은 어떠하였는가? 새로운 사회에서의 기혼 여성의 운명은 
        이전의 산업사회에서의 운명과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여성들이 생산에 참여하고 
        있엇으나 실상 경제적 독립은 없다. 이것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자아정체감 
        재구성에 대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여성은 아내가 되면 이러한 자신의 변화에 
        기꺼이 응하게끔 된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한국인의 눈과 마음속에서 기혼 
        여성의 적당한 장소는 집(가정)이다(주:한정자의 논문에 의하면 조사에 응한 
        여성의 78%가 직업에 우선하는 가정에 대한 의무감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이동원, 동아일보, 1988.12.23. 연세대 남학생의 70%이상이 여성의 첫째가는 
        의무를 가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언뜻 보기에는 한국의 문화가 보존되고 전통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결국' 많은 사람이 생각하기를 "한국 여성은 거의 언제나 가정에서 
        봉사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기본적인 삶의 
        방식-한국 사회구조의 한도내에서 일어나는 실제가 아닌, 단순한 방식의 
        변화들-에서는 사회를 혼란케 하지 않는다는 신화를 굳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기본적인 정체감을 잃지 않고 그럭저럭 
        변화를 뚫고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현대식의 
        발전이 과거의 파괴를 의미해서는 안된다는 쪽으로 진행되며, 더욱이 사람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원형의 감각을 버리지 않은 채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는 기회를 
        허용한다. 

        이러한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널리 퍼져 있는 듯이 보인다. 산업 분야에서 여성의 고용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기대감은 궁극적으로 여성이 가정 생활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일단의 지식인과 지도자들은 "가족 지상주의를 
        강조하는 서구의 핵가족제도도 아니고 한국의 전통적 권위주의적 제도도 아닌 
        가족 구조의 재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동등한 관계를 
        가지는 체계이어야 한다."(주:강숙자(1989), "한국여성운동의 이론 정립을 위한 
        시론", [여성연구], 봄호, 한국 여성개발원, p.247. 한국 여성이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에 역점을 두고 서구의 급진적 여성운동을 거부할 
        것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늘날 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이 시장에 추종되는 가족단위의 
        부분이 된 것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한국의 가정은 외면상 안정적인 듯 보이나 
        실제로는 정신적 분리의 위험한 단계로 가고 있다. 가정의 불안정성은 사회 
        상황에도 물론 영향을 미친다." 

        이혼·별거·유기 그리고 가족의 분리를 가져오는 것들은 최근 한국에서 
        중요한 논점이 되고 있다. 특히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나 자녀를 버림으로써 
        작게는 가족의 경제상황이 나빠지고 크게는 결손 가정이 생긴다. 이 결손가정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중산층에게는 문제의 심각성이 덜하나, 가족간의 
        대화, 애정의 결핍 같은 정신적 분리와 가족간의 법적소송은 심각한 논점이 되고 
        있다(주:이동원의 논문, 1983년 10쌍의 부부중 다섯은 정신적 고독감과 폭력과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명선(1985), "아내학대에 관한 이론적 
        고찰", [여성연구] 가을호, 한국여성개발원, p.98. 여성의 61%가 남편으로부터의 
        구타와 학대를 경험했다고 밝힌다.). 

        이러한 분석들은 정확한 것이며 사고의 주류에 다른 방도의 시각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것이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공유되는 시각인가?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시장의 영향력을 이미 받고 있는 가정에 대한 있음직한 미래인가? 노먼 재콥스가 
        서술한 대로, "소수의 지식인을 제외하고………사회환경이 최소의 개인적 안전을 
        제공하는 한, 개인의 이익추구는 가능한 듯이 보인다.………한국인들은 그들의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는 가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2. 현대의 가정과 현대의 생활 방식 
        여성들은 남성과의 종속적인 관계로부터가 아니라 집안에서의 지위와 관련된 
        단조롭고 고된 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있다. 소비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신(新) 
        한국여성은 가정과 함께 자신의 정체감을 그대로 유지시킬 운명에 처해 
        있다;그러나 현대 가정은 급격히 달라지고 잇으며 새로운 주부로 인해 
        여성역할의 대안에 있어서 중대한 제1단계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정의를 
        고수하는 것이 되고 있다. 전형적인 집안관리는 더 이상 자기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위한 필수의 기구나 도구 보관소가 아니다. 산업과 가정생활을 동시에 
        연결할 수 있도록 고안된 산업 생성물의 저장소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은 산업과는 관계없는 가정내의 생산 활동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가정으로 들어오는 소비품의 광범한 유통을 통해 생산품과 노동자를 
        규정하는 이데올로기가 여성뿐 아니라 여성의 일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게 됨에 
        따라 이러한 구분은 희미해진다. "여성이 가정에 들어 앉아 있음으로 해서 
        여전히 남성들의 외부세계로부터 분리되고 있으나 산업사회에서의 가정은 
        자본주의에 의해 더욱 더 제한되고 구분된다." 그러므로 여성은 딜렘마에 빠지게 
        된다. 핵가족화에서도 가부장적 규범들은 자녀양육 및 주부로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증대시키고 있지만 생산적인 여성의 능력은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그 자체가 산업 생산구조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가정적으로 
        한계지워지고 그럼으로써 가정 생활은 왜곡된다. 그러나 동시에 강력한 가부장적 
        전형이 여성은 가정이라는 전통 영역안에 머물러야 한다고 요구한 이래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그리고 여성역할의 구체적 기반파괴를 단언하는 
        직업적인 환경안에서 시대착오적인 역할과 함께 여성에 대한 강요적 개념이 함께 
        나타난다. 이러한 "현대적인 여성다움에 대한 곪아터진 모순"은 
        핵가족체제하에서 가사에 임하는 여성들에게 개인적·사회적 소외라는 격동을 
        가져야 준다. "역할 상실로부터 오는 불만족이 여성에게 불리하게 영향을 끼침에 
        따라" 표출되지 않은 불만과 연결된 막연한 불만감이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몇몇 연구들이 한국 주부에게 고통을 주는 문제가 증가함을 보여준다. 
        여성은 직업이 있건 없건 둘다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감이 낮은걸 보여준다. 
        영등포YWCA 정신건강 상담소에서 실시한 프로젝트는 환자의 50%가 중산층이고 
        중산층 여성의 80%가 30대 후반이거나 40대임을 나타내고 있다. 주로 언급된 
        증세들은 대개 우울증, 분노, 억압감 등이었다. 그 상담소에 있던 40대 중산층 
        주부의 80%정도가 조언을 필요로 하는 정신적 혼란과 문제점들로 고통받고 
        있다는 이와 유사한 보고서가 있다(주:[레이디 경향] 1984. 12월호, p.73.). 

        더구나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러한 증세를 느끼기 시작한 때부터가 아니라 
        그러한 증세가 심각해진 후에야 상담소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여성의 
        대다수가 그들의 경제적·사회적 목표가 성취되는 삶속에서 위기를 느꼈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을 갖는데 대한 혼란감을 고백했던 것이다. 의사와 사회 
        사업가들은(social worker)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이 가정에 대한 책임이라는 
        부담감과 이를 위한 기초가 되는 경제적 의존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비록 그 이유를 모두 제시하지 않는다 해도 
        교육열, 가정에서의 고립감, 상습적으로 늦게 귀가하는 남편들, 성적 불만족, 
        남편의 배신(간통)등과 같은 현상들이 주로 인용되었다(주:한혜경(1985), [한국 
        도시주부의 정신적 갈등의 사회적 요인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석사학위논문. 
        pp.2-6. 한국주부와의 개인 면담 조사에서는 중산층 여성의 1/2이상이 비록 
        만족한 경우라 하더라도 여성으로서의 좌절감을 겪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감정적 문제들은 정신 건강 권위자에 따르면 한국에서 늘어나고 있는 30, 40대 
        중산층 여성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주:S.H.Lee(1984), "한국 
        주부의 정서적 갈등", 제3회 태평양 정신의학회 미간행 논문.). 

        더 나아가 이것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대부분의 남편들이, 더구나 여성 
        스스로도 그들은 결혼했으므로 행복해야 하며, 심지어는 중산층 주부라는 위치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정신 건강 상담을 
        받고 있는 28명의 주부에 관한 연구에서(20명 외래환자였다) 그들중 상당수가 
        상담후에야 그들의 어려움에 관한 근원을 알게 되었다. 본 조사결과는 
        현대여성이 사회의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부러움의 대상이나 그러한 상태가 
        행복·만족의 근원이 되지는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주:S.H.Lee(1984), 
        "한국 주부의 정서적 갈등", 제3회 태평양 정신의학회 미간행 논문. pp.60-63.). 

        3. 산업, 가정 그리고 주부 
        이 제목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만약 현재 주부의 역할이 더욱 
        더 자신들이 살고 관리하고 있는 가정에 의해 규정된다면 현재 한국 가정의 
        기능과 형태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일반적인 신화가 무엇이건간에 그러한 
        사실이 자기 신뢰감을 일으키거나 전통을 보존하는데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여성에게 주어지는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근원은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가정은 제품 생산을 위한 장소가 아니며 
        소비하는 가족들의 소비능력을 전시하는 영역이 되었다. 여성 잡지의 광고는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구입을 통해서만 성취되는 합리적인 배열상태와 유행의 
        모델을 통해 이상적인 부엌들을 소개한다. 접시, 그릇, 전자요리기구, 오븐 등 
        최신의 전자제품들을 광이 나도록 닦아놓고 진열해 놓은 모형 부엌은 음식 
        제공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현대식 부엌은 핵가족용으로 축소한 것만 
        다르지 비행기안의 기내 부엌과도 같다. 현대 부엌의 정의에 따라 대량 생산된 
        모든 제품은 하나도 진기한게 아니다. 이는 상품을 생산하고 그것이 최선의 
        사용을 규정하는 이데올로기가 모든 가정에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일률적인 제품의 배열까지도 일률적이 되고, 공장 생산을 수행하는 합리적인 
        효율성이 가정 주부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광고에 게재된 현대식 부엌에는 좋은 찬장과 조리대가 가득하다. 생산라인의 
        소비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것처럼 부엌은 음식 준비의 장소이다. 저장고와 
        저장 용기들이 새로운 현대식 부엌에서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은 더이상 
        된장, 고추장 및 저장식품들을 직접 만들거나 저장하지 않는다. 사가지고 와서 
        포장을 풀기만 하면 되기도 하고 가열되거나 조미가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조리된 음식 패스트푸드는 한국 전역에 널리 광고되고 소비되고 있으며 현대 
        부엌이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요리법이다. 

        이러한 부엌으로부터 현대의 주부가 받는 혜택의 하나는 자유이다;그 이전의 
        어머니 세대를 둘러쌓던 단순하고 고된 일로부터의 자유인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대량 생산품에 대한 의존뿐 아니라 요리솜씨의 중요성까지도 
        전기 주방용품과 조리 식품때문에 평가절하되어 가치를 잃어가게 된다. 라면이나 
        전기밥솥은 사용이 간편하게 만들어졌다. 그건 누구나 바로 준비할 수 
        있다.;이들은 단지 아주 적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 과거 농가의 
        여성들이 유교적인 가족계급제도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졌던 반면, 생산과 음식 
        만드는 숙련된 기술은 가정태에서 비공식적이지만 실제적인 힘을 제공해 주었다. 
        그들의 임무와 작업은 단순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대신에 굉장한 훈련과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필수적인 일들을 숙달하는 여성의 
        능력은 거의 자기 가문의 외적인 지위와 위신의 근원이 되었다(주:권영자는 
        제주도에서는 여성의 경제적·생산적 능력이 때로 여성을 위한 정책 결정에 대한 
        영향력이 된다고 한다. 농촌의 아내는 농사에 관한 결정권은 별로이나 가정내의 
        일에 관해서는 결정권이 컸다.). 

        이러한 가사솜씨들을 비하함에 따라 그 기술은 현대부엌에서 허드렛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내의 활동이 가정 요리를 대량 생산된 식료품의 소비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내에서 합리화되었다. 그 결과는 음식을 만들고 저장하는데 
        참여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화의 침식이다. 부엌은 어떤 
        사건이나 활동과 같은 가정밖의 생활에 필요한 언어적·상징적인 통제이외의 
        가사에 필요한 기술의 부족한 남성의 힘으로부터 격리된 영역이었다. 가사와 
        관련된 여러 토속신들이 보편화되어 있었으므로 부엌은 순수한 여성 전문 지식의 
        정신적·물질적 영역으로 여겨 왔었다. "관념상 주부의 권리가 가장의 권리보다 
        못하다 해도 한국 가정에서의 주부의 역할과 자유는 중요하다. 그 역할과 자유는 
        내실(기능상 부엌, 창고, 침실까지 포함하여)에 종사하는 것으로 상징된다. 그 
        내실에는 여러 종류의 토속신들이 있다.……" 또한 생필품과 저장된 것들이 섞여 
        있엇다. 

        전통부엌은 여성의 가족구성원들간의 경제적·물질적 유대로서 기능했다. 
        확실히 부엌은 합리적이지 못했고, 음식 또한 공장에서 포장되고 요리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성에게 집안에서 단체 생산에 참여할 필요성을 갖게 했다. 
        쌀이나 기타 곡식을 심고 추수하는 것은 노동 집약형의 일이기 때문에 가족 
        모두의 협동과 상호 도움이 필요하였고, 때때로 집단유대와 집단정신을 세우는데 
        있어 음식만들기의 복잡한 과정이 중요시되었다. 노동을 절감하는 기구와 
        인스턴트 식품들은 가정내의 숙련된 집단 생산의 유대를 깨어놓았으며 그것을 
        개인차원의 단순화된 식사준비라는 하찮은 일로 대치시켜 놓았다. 

        전통적인 아내와 어머니의 기술뿐 아니라 내재된 가족들의 유대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제공해 주는 자연적인 환경의 파괴는 조리되고 포장된 음식을 위한 
        자리로서 현대 부엌의 기능중앙에 놓여있게 되었다. 부엌에서 물을 끓이거나 
        냉동식품을 꺼내 조리하는 현대의 남편을 묘사하는 텔레비전 쇼나 광고는 점점 
        일반적이 되어간다. 이런 광고에서 아내는 남편의 우스운 행동에 재미있어 한다. 
        그런 종류의 드라마는 그것이 진부하고 케케묵은 것이긴 해도 행복한 것이라는 
        의도를 갖는다-결국 남편은 포장된 음식을 완성하는데 성공하고 온 가족이 
        조화와 기쁨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드라마의 중요성은 얼핏 대수롭지 않게 보이나 실제로는 
        그렇치가 않다. 두개의 메시지가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첫째, 
        공장에서 가져온 포장 음식들이 아무리 둔한 사람조차도 조리가 쉽다는 이유로 
        환영을 받는다. 그러므로 과거의 단순하고 고된 일로부터의 해방이 암시된다. 
        소비유형에 있어서 변화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낙관적인 변화로 
        묘사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은 어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주부개인의 기술이 어설픈 아마츄어의 아주 단순한 
        생산능력보다 덜 중요하게 된다. "현대의 주부는……더 이상 요리사가 
        아니다-통조림 파는 사람이다." 개인의 전문적 기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에 
        따라 노동 형태의 초점이 사람이 아닌 객체로 옮아간다;그리고 이러한 전문적 
        기술은 점점 부식되어가는 불필요한 것이 되며, 자본주의 상품의 단순성에서 
        생가는 상황은 사람들이 오로지 가장 단순한 물건만 다룰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에 그들을 의존적인 소비자로 만든다. 

        더구나 이러한 상황속에서 사회와 개인의 관심은 개인의 가치에서 인간의 
        기술에 근거를 둔 상품 그 자체로 옮아간다. 상품의 단순성에 의해 대량 생산된 
        식료품과 현대 부엌은 모든 사람을 가정내에서 똑같은 능력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이 변화는 가정내에서 주부 위치의 근간이 더이상 부엌내에서의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대신에 가족이 음식을 먹는 
        과정은 시장에 의해 도용되고 여성의 전문지식은 소비라는 공동의 필요성에 의해 
        제거된다. "전통적이고 단순한 고된 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여성 자신의 일터에 
        대한 많은 지식과 지배권을 빼앗기고 있는 과정이 하나가 되고 있다". 

        그리고 확실하게 이와 같은 결과는 점점 더 주부의 현실로 되어가고 있다. 
        연세대의 한 연구는 전체 주부의 86%가 자주 밥대신 인스턴트 식품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인스턴트 식품으로는 라면, 컵라면, 포장된 
        찌개거리, 양념된 고기, 만두, 햄, 냉동식품, 피자 등이 있다. 주부들이 그 
        음식들을 선택하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편리성'이었다(주:동아일보, 
        1988.9.12. 직업이 없는 여성이 직업을 가진 여성보다 인스턴트 음식을 더 
        애용한다는 것이다.-85.4%;78%) 

        위에서 나온 광고 드라마의 핵심에서 끌어낼 수 있는 두번째 요점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한국인의 삶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드라마는 전에는 남편의 금지구역이었던 부엌에 
        들어가도 좋은 것처럼 묘사된다;그러나 아내는 이 침입자에게서 위협을 느끼지 
        않으며 가족들은 이러한 변화를 우려하지 않는다. 가족의 유대감은 없어지고 
        남성의 능력이 가족을 하나로 묶는다는 이 메시지는 가족의 단결력이 집단 
        생산에 기초를 두지는 않으므로 가족을 위한 기반이 소비가 되었다. 가족중 
        누구나 혼자서 음식을 만들 수 있으나 이것은 가족이 함께 소비하는 행동의 
        수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함께 소비하는 가족은 자본주의의 산업생활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이 두번째 메시지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실재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것은 변화의 시대에 사람들에게 안정성에 대한 환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들을 그들 가족내에서의 중심적 위치가 공격받지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더구나 그들은 단순하고 고된 일로부터 벗어난 자유의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소비는 매일매일 돌보아지고 숭배될 새로운 가정의 신이다. 그 
        성상들이 모든 부엌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된 신들과는 달리 이 
        '새롭고-개선되'신은 매일매일을 약속하는 '지금까지 보다 더 좋은'곳으로 
        인도한다. 단추 하나만 누르면 밥이 된다. 최소의 노력으로 음식이 만들어진다. 
        전통적 환경에서 벗어난 여성에게 있어서 가정생활의 전통적 방법은 더이상 
        고수할 필요성이 없게 되었다. 소비는 이것을 더 나은 변화라고 합리화 시키며 
        여성에게 새로운 주위환경에 아주 적합한 생활 방식을 제공해 준다. 전통적 
        활동과 현대적 환경 사이의 모순과 충돌은 자본주의 시장체제하의 여성의 
        소비활동으로 인해 줄어든다. 소비활동은 여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처하고 있는 
        환경에 융화되도록 만든다. 사회변화에 따른 스트레스에 아주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인 것처럼 소비가 제시된다. 소비로해서 가사노동과 
        현대생활은 서로를 보완한다. 이 둘은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뿌리에서 같이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조화에 의해 얻어지는 대가는 무엇인가? 이제 주부의 노동과 
        솜씨는 가정내에서 지위를 유지하는데 별도움이 되지 못한다. 가정은 사실 
        누구에 의해서든 유지되고 음식도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아내의 중요성과 가치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녀는 어떻게 자기자신과 가족들에게 
        자신이 의미있고 필요한 존재라는걸 증명할 수 있는가? 주부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소비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물건들은 어떻게 공급되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자본주의 생산의 사회적 측면과의 관계가 
        얽혀있다. 한국에서 자본주의 시장하의 상품들은 남성들이 생존을 위해 회사에 
        의존적이게 만드는, 일련의 경제관계를 만들어내는 개인적 노동과 임금을 
        교환함으로써 형성된다. 이에 따라 중산층 여성에게 요구되는 일은 사회안에서 
        그들의 위치를 정해주는 소비에 의존하게 됨으로써 이러한 생산과 소비의 
        싸이클에 의해 완전히 자본주의화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현대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은 시장경제를 위해 생산활동을 
        한다;여성은 그 시장에서 소비활동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활동들이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은 지위를 마련해주지 않는다. 여성들은 물건을 사기위해 
        필요한 돈에 의존하게 되며 이 돈은 생산활동에 묶여져 있음으로 여성들은 
        필요한 돈을 제공하는 남성들에게 의지하게 된다. 한편 소비활동은 어느 여성에 
        의해서건 쉽게 수행되기 때문에 여성과 같은 의존적인 관계에서 쉽게 
        빠지지않는다. 그러므로 한국여성들에게 있어서 현대 중산층 가정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소비품과 그것을 만들어 내는 남성 양쪽 모두에 의해서 여성을 
        의존적으로 만든다(주: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불균형적인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모래성'이라는 프로가 KBS TV에서 방영되었다. 
        거기에 한 여성이 딸과 남편옆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감명깊었는데 그 
        부인은 10대의 딸에게 결혼해서 자신을 지원해 줄 남편에게 의존치 말고 
        실제적인 능력을 키움으로써 얻는 높은 수준의 경제적 독립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4. 이데올로기로서의 소비 
        새로운 현대가정은 한국가정에 바탕을 이룬 전통적이고 사회적인 구성을 
        변화시키는 것 그 이상이다. 이제 시장의 필요성에 따라 여성의 이미지와 여성의 
        역할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하며 이 도시적 삶은 전통의 파괴속에 새로운 
        생활양식의 대체를 상징한다. 이 새로운 생활양식은 대량 소비를 위한 시장의 
        필요성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새로운 가정은 전통농가에서 처럼 그녀의 솜씨나 능력때문에 어머니를 중심적 
        인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중산층 가정에 한 여성으로 가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으로 여겨지며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음으로 해서 가정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합리적인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교육 및 효율성이 점점 
        중요시 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교육은 토머스 제퍼슨에 의해 제시된 자신을 
        위한 의식있는 행동과 자아성취를 위한 그런 교육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육은 의존성과 복종 및 시장을 활성화하는 과학적 합리성을 구체화 시킨다;그 
        임무는 여성의 전통적인 솜씨로 해야하는 일들을 대신해주고 여성들이 상품화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익히도록 하고 획일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이 현대 세계에 적응하도록 주부의 역할을 규정해주는 여러가지 
        활동들이 이루워지고 있다;가전제품들은 현대식 부엌에 맞추어 표준화된다. 
        주부들은 이 표준화된 자신들의 부엌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는 주부의 정의가 자신들이 행하는 행동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허버트 마르쿠제가 "의미는 개개의 운영과 행동에 따라 
        한정된다"(주:Herbert Marcuse에 의하면 현대가정이나 부엌이 아내에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적으로 독립된 사회조직으로서 필요성을 제공하는 도구가 더 이상 
        되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 것처럼 현대의 중산층 여성들은 그들 자신들의 
        활동이 점점 제한되고 한정지어짐으로써 그들의 의미도 변화되고 있다. 

        현대가정이나 부엌이 아내에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적 독립된 
        사회조직으로서의 필요성을 제공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자본주의 시장에 
        의존함으로써 여성의 활동과 생활습관을 자본주의 생활방식으로 닮아 가게 
        만든다. 전통적으로 여성 개인의 중요성에 부과되었던 것이 점점 없어지도록 
        의도되고 있다. "일상의 오래된 의미와 규범은 사라져야 하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에 채워져야 한다". 그러나 교육에 의해 심어지는 가치와 생각들이 
        현실속에서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쇠귀에 경읽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이러한 가치와 
        행동을 '보편화된 일반상식'처럼 되도록 설득력을 갖도록 하고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백지상태에서 공식교육과정에 접하게 되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안에서의 
        '실제적인 경험'을 이미 가지고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에 기반을 둔 
        소비는 이상과 현실이 잘 조화된 것처럼 틈이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런 
        환경속에서 자본주의적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흐리게 
        한다. 지배적 문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적 통념을 따르는데 강제에 
        의한 것보다는 자유의사로 따르게 되는데 이때 자유의사는 이미 자본주의의 
        필요를 지원하도록 교묘하게 다듬어져 왔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련의 파급효과는 사람들의 '즉각적인'대응이 영향력있는 구조와 가치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주:Antonio Gramsci, Prison Notebooks, p.420. 
        Callinicos, Gramsci's Marxism, p.71.). 

        "현대의 주부는 현대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계산방법을 교육받는다;예를 들면 
        주부들은 자신들이 소비하는 식료품들과 그 식품들의 칼로리를 계산하는 
        것들이다". 이는 대중 여성잡지, 신문, 텔레비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동아일보에서 가정을 잘 운영해 나가는 방안들에 관한 
        기사가 정규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중 연세대에서 발표된 한 보고서에 기초를 둔 
        기사는 다음과 같다. 

        아내가 식사준비를 하는 가족의 식습관에서 중요한 특성이 
        발견되었다.……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음식을 만들 때 정확하게 계량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눈대중으로 간을 하고 34.4%의 아내만이 미리 식단을 
        짠다.……그러나 연세대의 조사는 산업화·경제성장·핵가족화가 식생활에 
        있어서 사람들을 더 편안한 생활방식으로 옮아가도록 한다(주:동아일보, 
        1989.9.12.). 

        더 젊은세대, 더 많은 주부들이 비전통적 음식을 먹으며, 이들은 자주 빵과 
        우유로 아침을 대신하고 인스턴트 식품을 애용한다는(주:동아일보, 1989.9.12.) 
        것이다. 위의 논문은 한국인이 '과학적인 습관에 기초를 둔 음식 문화'의 정립을 
        필요로 하며 젊은 세대들에게서 이를 따르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런 종류의 생각은 사실 한국의 모든 여성 잡지속에서 꽤 잘 
        나타나 있다. 그러한 합리화된 과정에 기초를 둔 특별 요리법 내지 독자를 위한 
        주단위 혹은 월단위의 식단 계획을 포함하는 '효율적인 계획'을 부추키는 것이 
        그것이다(주:대부분의 잡지가 연말 보너스로 1년치 가계부와 음식 메뉴가 딸린 
        달력을 낸다. 그리고 주부들에게 가정생활 계획 콘테스트에 참가할 것을 권한다. 
        여기에서 여성은 효율성과 근검의 정도에 따라 선발되고 상을 받는다.). 
        과학적인 주부의 출현을 돕기 위해 한국의 교육제도는 각학년 교과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현대 여성을 위한 필수과목으로 가정과목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예는 고등학교,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공립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모두 문교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공립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모두 문교부에 의해 채택되는데 그것은 역할모델과 개념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책들이다(주:박부권(1981), "교과서의 편찬 과정의 
        사회학적 분석", [교육현실과 교사], p.229.). 

        고등학교 가정 교과서의 설명이나 그림에 나타난 현대가정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즐겁고 기능적인 집은 현대적 시설과 편리성을 포함한다." 더구나 가정은 
        더이상 가정이 아니다;기능적인 주거 환경이 되는 엄청난 변신을 
        경험해왔다(주:문교부(1984), [가정] pp.243-244.). 교과서에 나타난 부엌에는 
        모두 커다란 냉장고, 스토브, 오븐, 찬장, 조리대 등이 있다. 이것은 의식 
        저변에 깔린 기능주의의 전형이다. 그리고 또한 한국 여성 잡지에 등장하는 
        부엌의 종류와 똑같다. 작은 공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간장 항아리나 김치독 등이 
        들어있는 그림은 하나도 없다. 얼핏 보기에도 처음부터 음식을 장만하기보다는 
        시장에서 산 물건들을 조리하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어 핵가족이나 이런 부엌을 
        이용하여 조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효율적인 주거공간 및 '식당'에서의 활동은 물론 효율적인 면에서는 
        합리적이다. "물품 구입과 가사는 낭비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행해져야 한다.…… 
        그리고 표준화되고 정해진 순서에 맞추어야 한다"(주:문교부(1984), [가정] 
        pp.243-244.). 확실히 자본주의 작업장의 이데올로기가 주부의 세계에까지 
        침투되어 공장의 생산라인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현대 생활방식과 가정으로 침투되는 이러한 공식적인 교육은 고등학교 
        이전에 시작된다. 국민학교 4학년 실과책 표지에는 어머니와 딸의 사진이 있다. 
        앞치마와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어머니가 청소기로 카페트를 청소하고 있고 그와 
        비슷한 복장을 한 딸이 가구의 먼지를 닦고 있다. 분명히 그 책은 소년·소녀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남녀의 성이 잘 규정된 사회적 역할속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각 성을 위해 설명되고 할당된 역할과 활동은 
        일련의 사회적 기대를 분명히 차별적으로 반영한다. 예를 들어 앞의 책에 나오는 
        6장의 그림중 4장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활동에 관한 것이다. 그 활동들은 다음과 
        같다.;현관에서 우체부 맞이, 접시닦기, 빨래널기, 빨래말리기, 시장보기 등 
        덧붙여 소년의 활동은 자기 침대 만들기, 집밖에서 일하기 등이다. 

        1986년 한국의 중학교 교과서에 나타난 성별 역할에 대한 김정자의 연구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견된다. 여성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역할은 가정에 기반을 둔 
        아내, 어머니의 역할이다. 교과서에서 아내는 다른 호칭들보다 2배가량 자주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호칭이었다. 여성은 등장하는 횟수의 
        65.2%가 결혼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으나, 남성은 19.2%만이 그렇게 나타났다. 
        여성이 일과 관련에서 등장하는 경우는 17.8%였으나 남성의 경우는 
        69.2%였다(주:김정자(1987), "중학교 교육과정에 나타난 성역할 
        연구",[여성연구], 봄호, 한국여성개발원, pp.69-75. 이책에 등장하는 
        직업여성의 직종은 11개에 불과했다. 대조적으로 남성의 직종은 40개가 
        등장했다.). 

        내가 살펴 본 책에 나타난 교육과정도 별차이가 없다. 학생들의 나이는 
        다르지만 여성의 세계에 관한 기본교육에 나타난 부엌에는 믹서기, 전기 
        프라이팬, 밥솥 등을 포함하는 현대적인 최신의 제품들이 즐비하게 
        나열되어있다. 이러한 효율적인 작업장소는 그것이 어울리는 사고를 불러 
        일으키며 교과서는 이것을 잘 전달시킴으로써 행복은 느낀다. 여성에 대한 
        태도는 환경에 기초를 둔 소비자라는 테두리속에서 만들어진다. 젊은 미래의 
        주부는 음식이 낭비되지 않는 방식으로 준비하고 분배하고 측정하고 구분하고 
        한다고 배운다. 

        이러한 교육은 공장의 효율성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 사회적 관계의 기본 
        요소들을 잘 소개해 주는 이데올로기와 체제에 따를 것을 함축한다. 
        작업장소에서의 생산에의 필요성이 효율성에 치중한 전문 기술자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생산활동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아도 그들은 생산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환경, 방법, 목적 등을 제한한다. 노동자는 생산활동을 하면서도 공장을 
        가동시키는 전문 기술자 밑에서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방법이나 형태를 결정하는 
        힘을 별로 갖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내의 새로운 세계도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영양학 전문가에 의해 똑같이 규정된다. 학생들은 자신의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얻은 가족적 지식과 '옛날식'의 방법을 낮게 평가하게끔 교육받는다. 대신에 
        그의 안내철학인 과학의 존재를 믿으며 진실의 대변인의 성직자 - 전문가 - 를 
        믿으시오." 이러한 새로운 세계에서 전통적인 생활방식은 타당성을 잃어왔다. 
        전통적인 기술은 더이상 여성의 지위를 향상 시키지 못하며 여성을 유행에 
        뒤떨어진, 덜 매력적인 존재로 낙인 찍는다. 새롭고 현대적인 방법 스스로가 
        옛것을 대체한다. 이제 어머니들의 지혜는 멀리 떨어진 과학자의 실제적인 
        평가와 권고보다 훨씬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현대 세계는 복잡하며, 때때로 불가사의하기도 하다. 생산은 더이상 여성의 
        직접적이고 알기쉬운 세계가 아닌, 공장에서 이루어진다. 음식은 직접 만드는 
        대신 사게 된다. 받아들일 수 있는 소비가 무엇인가하는 문제는 더이상 전통적인 
        방법으로 대답할 수 없다. 그러면 여성은 어떠한 상품이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의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와 같은 딜렘마의 해결책은 현대사회를 
        거부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세게 그 사회속으로 빨려듬으로써 얻게 
        되어 여성들에게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여성의 
        무력함을 만들어냈던 체제는 또한 구제수단도 제공해준다.;'물건 구입시' 
        교과서는 이렇게 말한다. "KS 마크가 있는 물건을 고르는 것이 확실하다"고 KS 
        마크는 사람들이 제품의 결과나 원리 모두에 신뢰감을 가질수 있게 해준다. 

        메시지는 확실하다. 기능적으로 신비스러운 생산과정을 전제로 하는 
        비전통적이고 당혹스러운 세계에서는 그 세계의 부정이 아닌, 전문가의 견해에 
        대한 믿음에서 확실성을 찾을 수 있다. 평범한 주부들의 견해는 무시되고 
        전문가의 과학적인 견해만이 전부인양 여겨진다. 집과 가정을 관리하는 과거의 
        지혜는 사라지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여겨진다. 

        자신들의 활동목표를 생산에서 소비로 바꾸고 전통적 가사능력을 소비활동에 
        돌립으로써 과거의 태도를 변화시켜 효율성을 향한 합리성을 맞추어간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새가정을 자본주의화하는 
        방법이었다. 기분좋은 말들로 유도된 소비경향의 강요를 납득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국민학교 4학년 교과서는 성실하게 
        자신의 집관리에 대한 방법을 소녀들에게 가르친다. 다음의 글은 성공적인 집과 
        조화로운 생활을 위한 기반인 합리성에 근거한 집안을 관리하는 '일'에 대한 
        설명이다. 

        "물론 당신은 집에서 행할 임무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잘해냈을 
        때에 그것은 당신의 가족들에게 행복을 주게 됩니다.…… 일을 효율적으로 
        행하도록 나누어야 합니다.…… 매일매일의 작업 계획을 세우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미리 일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차트에 
        써서 그렇게 하십시오"(주:실과(1984), pp.12-17.). 

        여기서 우리는 다시한번 현대적 용어로서의 가정의 재구성을 볼 수 있다. 
        사라지고 있는 전통의 모습과 은폐되어 있는 자본주의의 번성하는 모습이다. 
        가정생활은 학교교육이 가정의 신성함을 엄숙하게 말함으로써 찬양한다.;그러나 
        가정은 가정과 시장으로부터 벗어난 권위가 근본적으로 변함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졌다. 가정내의 행복·조화·성공은 모든 여성의 의무이나 이것은 오직 대형 
        시장에 대한 믿음과 우상들을 환영하고 익힘으로써 가능하다. 물론 이런 모습은 
        때때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적으로든 교사들에 의해 재강화된다. 1987년말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바에 의하면 국민학교 교사들은 "남성은 정책을 결정하는 류의 
        지위(직업)가 적합하다;반면 여성은 보호하는 류의 지위가 적합하다"고 믿고 
        있었다. "보호하는 지위"라 함은 교사들은 직접적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머물러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여성은 음식을 만들고 바느질을 해야 
        한다"는 그들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전통적인 양식에서 현대의 아내를 정의하나 
        이는 현대적인 '행복'- 그리고 거기엔 좋은 아내가 되려는 능력까지 포함해서 - 
        을 제공하는 여성의 능력이 소비품에 얽매이지 않는 개인적인 자질이나 능력을 
        허용치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주:동아일보, 1988.1.20.). 

        김정자의 조사는 교사들의 이러한 성차별주의를 확인시킨다. 그들은 거주 
        여성의 첫째가는 책임을 '가정적 의무'라고 믿으며 아내의 사회적 지위를 그 
        남편의 지위에 따라 정의하였다. 여학생들에게는 아름다움, 선, 사랑, 친절, 
        인내, 순결 그리고 복종과 같은 전통적 특성들을 강조하였다. 

        모순되게도 교사들의 이러한 행동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으로는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내에서 사회적 조화와 전통적 가치를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뜻하지 않게 많은 한국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스트레스와 문화적 모순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결정적으로 비전통적 가정을 확립하는데에 있어 그러한 
        전통적 부담감을 짊어지고 있는 현대 한국 여성은 더해가는 정신적 긴장과 역할 
        갈등을 겪는다. 

        의식과 무의식, 이것이 자연적으로 생기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억제하는 사고와 행동들은 서로 관련되어 
        나타난다. 

        삶의 초기단계에 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볼 수 
        있다. 유치원은 비교적 진보적이어서 아이들은 그들 성의 구분없이 교실 부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 소년이 먹은 곳을 치우라는 교사의 말을 듣고는 
        그것을 거부한 채 울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려졌는데 그 소년은 
        집에서 남자는 부엌에서 상을 차리거나 앞치마를 입어선 안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엄격하게 여성의 것처럼 보인다(주:정세화(1985), 
        "가정, 학교, 사회교육의 측면에서 본 한국에서의 사회화", [여성문화의 도전], 
        크리스찬아카데미편, p.175.).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아동들에게 습득되는 성별 고정관념이 서울에 있는 
        탁아소에 대한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아동들은 때때로 성별로 나누어지며 자신의 
        성에 적합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듣는다. 이런 태도는 여아의 경우 수동적인 
        역할을, 남아의 경우 보다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역할을 내용으로 
        한다(주:최기영(1987), "유아교육 관계에서의 성역할 사회화 과정에 대한 
        참여관찰 연구",[여성연구], 가을호, pp.112-116, pp.119-220. 또한 교사들은 
        '우리집'이라는 노래를 가르쳤다. "아빠는 거실에서 신문을 보구요/엄마는 그 
        옆에서 바느질을 하지요/언니는 피아노를 치구요/오빠는 책상에서 알파벳 공부를 
        해요/ 나는요 인형이랑 자장가를 불러요". p.130.). 

        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른 모순에 직면하고 있는 여성들은 여러 방법으로 
        대응해 왔다. 아마 가장 일반적인 최초의 응답은 일련의 정신적 갈등과 역할에 
        대한 불만족을 주지하는 것이겠다. 오늘날 기혼여성의 절반이 만약 결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결혼을 후회하고 
        있다. 그들 중 거의 40%가량이 이혼이나 별거를 고려한 적이 있었다(주:노미혜, 
        [여성연구], 1987. 여름. p.180. 이혼율(결혼비율에 대한 이혼비율)은 
        전국적으로 1975년에 5.8%, 80년에 5.5%, 83년에 7.2%, 84년에 10.2%였다. 
        도시의 경우는 각각 8.7%, 7.8%, 9.6%, 13%였다. 변화순(1987), "한국과 
        프랑스에서의 가정과 이혼의 비교연구", [여성연구], 겨울호. pp.105-106. 
        해방후 이혼율에 관한 논문에서도 약간 다른 양상은 있으나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조사한 이혼율은 다음과 같다;1950-60년 4%, 65년 3%, 70년 5.5%, 
        80년 8.3%. [여성백서], p.66. 동아일보, 1988.11.16일자 참조.). 

        중산층 직업여성들과의 인터뷰는 이러한 현실이 불행하게도 정확한 것임을 
        보여준다. 결혼한지 1년이 지난 서울에서 근무하는 6명의 직업 여성중 한명은 
        결혼생활을 행복하다고 했고, 두명은 유보조항을 붙여 그렇다고 대답했으며, 
        세명은 결혼할 기회가 생긴다면 현재의 남편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솔직한 
        답변을 하였다. 이런 감정들이 미래에 대한 예상과 낙관을 표현하는 한 독신 
        여성의 대답에서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더 나이먹은 기혼여성들은 결혼 생활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환상이라고 경고하였다. 

        일찍이 기존의 전통적 생각에 대해 남성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이 없음을 깨닫는 
        여성들이 다른 여성을 도울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해오고 있다. 또다른 여성들은 
        배우자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고쳐나가며 직접적인 소유권보다도 투자에 의한 
        재정적 힘에 의해 상당한 영향력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주:1985년 집을 소유한 
        아내는 4.9%, 주식을 소유한 경우는 1.1%였고, 자가용을 소유한 경우는 없다시피 
        앴다. 현재는 30%가량의 중산층 주부가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 

        Ⅱ. 결론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많은 중산층 여성들이 전통적 이상과 상반되는 
        자본주의 현실사이에서 문화지체현상에 따른 고통을 받는다. 더구나 많은 중산층 
        남편들은 아내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며 혹 깨닫는다해도 때때로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다(주:복부인, 남성들의 매음, 중년부인 
        전용 술집, '캬바레'등의 현상은 최근 몇년새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남성들은 여성들 사이의 이러한 경향에 대해 굉장히 빠르게 비난을 하고 
        나섰다.). 어째서 한집에 살고 있는 부부간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매우 복잡하다. 이는 각 개인의 
        현대사회에서의 구체적 행동 및 경험과 관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전통문화 
        속에서 현대의 생활방식이 변화해 가는 것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농촌가정은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는 성별로 분리되었으나 생산에 
        의한 경제적 측면에서는 유대를 맺고 있었다. 분리된 영역에 살면서도 남성과 
        여성이 서로 보완해가며 생산적 일을 수행해왔다. 오늘날 남성과 여성의 영역은 
        여전히 구분되어 있으나 그들의 경제적 역할과 기능은 대체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양성의 전통적 구분에 따른 역할은 한국사회와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들을 합법화하고 허용해 주고 있다. 중산층 부부들이 이러한 
        전통을 받아들임으로써 여성의 현실적인 삶에 대한 한정된 생각과 이미지를 가진 
        남편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는 변형되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자신의 배우자를 신화(myth), 고정된 역할모델, 비현실적 
        기대감을 통해 평가하는데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상투적인 말들을 할 뿐이다. 

        전통을 변혁시키려는 노력과 유입되는 물질문화가 한국사회에서 굉장한 모순을 
        낳고 그들에게 엄청난 갈등을 주었기에 과거를 살리려는 노력, 즉 변화와 지속이 
        병행되는 과정에서의 진통이다. 

        한국가정은 서구의 핵가족 구조에 순응되고 있으나 아직도 남성중심의 위계적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고 있다. 또한 가정이 사회생활의 중심으로 강조되고 있으나 
        많은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위해 가정 밖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산업화된 
        자본주의하에 삶의 자기만족, 개인주의, 그리고 물질적 성취를 장려하는데 이 
        모든 것은 점점 시장의 필요성에 의해 정해진다. 가족중심주의, 협동, 조화로운 
        관계 등과 같은 가치들은 더이상 사회적, 물질적 현실을 반영시키는 것이 
        아니다. 어제까지의 진리가 옛날의 가치로 점점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번역·이지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