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세미나 자료 : 사회변혁의 와중에 있는 중국여성
        저자 펑 링
        발간호 제034호 통권제목 1992년 봄호
        구분 ARTICLE 등록일 2010-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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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론 
        중국은 지금 세계인구의 4분의 1, 즉 11억 인구를 가지고 있는 대국이다. 그 
        중 여성은 48%로써 세계 여성의 4분의 1일 차지한다. 이런 방대한 여성집단은 
        국내에서나 세계에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헌법은 교육, 직업, 
        참정에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한 권리를 누린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혼인법, 
        직무교육법, 노동취직법규도 중국여성의 권리와 지위에 대하여 규정하였다. 제 
        8차 5개년계획을 수행하는 기간에는 <여성법>을 채택할 예정이다. 다수의 
        중국여성들은 이런 사상의 지도와 법적 보장을 받아 도시와 농촌에서 생산과 
        사회생활에 참여하고 있다. 1988년도의 통계에 따르면 도시여성들 가운데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536만 2000명으로써 도시여성 노동력의 82%를 차지하였다. 
        농촌여성은 1억5000만명으로 거의 전부가 농업, 임산업, 목축업, 부업, 어업 
        그리고 향·진기업의 노동이나 운영관리에 참가하고 있다. 1978년부터 시작된 
        개혁은 농촌개혁에서 도시개혁으로, 경제개혁에서 정치개혁으로 발전하고 있다. 
        생산력이 높아지고 생활형편이 좋아지면서 중국의 국민들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새 관념을 가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모순과 충돌도 생기게 되었다. 
        특히 중국여성들은 새로운 기회를 얻음과 동시에 문제점도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도전은 경제의 변화와 함께 중국여성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초점은 취직, 참정, 자질 향상이다. 필자는 본문에서 
        중국여성들이 이 세 가지의 새로운 도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서술하려 한다. 

        2. 여성은 취직에서 새로운 정세에 직면 
        경제개혁에서 중요한 목표의 하나는 산업구조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지난 날 
        중국의 산업구조를 보면 1차산업이 약 80%, 2차산업이 약 16%, 3차산업이 약 
        4%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에서는 곡물생산을 위주로 하여 농업만 중시하고 
        부업은 경시했으며, 공업에서는 중공업의 발전을 중시하여 중공업에 치중하고 
        경공업을 경시했었다. 그러다가 개혁을 시작한 후부터 농촌에서는 다각경영을 
        힘써 발전시켰고, 공업에서는 경공업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상업·서비스업·음식업 등 제산업이 발전하였다. 산업구조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직업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1978년에는 직업을 가진 여성 중 1차산업 
        종사자가 70.7%, 2차산업 종사자가 17.6%, 3차산업종사자가 11.7%였는데 
        1989년에 와서는 1차산업의 종사자가 60.2%로 10.5%가 줄어들고, 
        2차산업종사자가 21.9%로 4.3%가 늘어나고, 3차산업 종사자는 17.9%로 6.2%가 
        늘어나는 등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변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여성들의 
        취직에 유리하다. 

        첫째로, 산업구조의 재구성은 공업화와 도시화의 행정을 가속화했고 특히 
        중심도시 주변의 위성도시와 기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이리하여 장기간 농촌에 
        방치되어있던, 2억이 넘는 유휴노동력이 활동무대를 찾아 도시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농호별 생산량도급제의 일반화, 단일종식업으로부터 다각경영으로 
        발전하였고 자급자족의 소농경제로부터 전문화, 상품화 생산으로 농민의 생산과 
        생활내용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이리하여 '386160부대'라는 말이 나왔고, 
        그것은 즉, 남성 청·장년들은 토지를 떠나고 농촌에는 여성(3.8 세계여성의 
        날이라는 말에서 38은 여성을 의미함), 어린이(6.1 세계어린이날이란 말에서 
        61은 어린이를 의미함), 노인(60세 이상은 노인이라는 뜻에서 60은 노인을 
        의미함)만 남았다는 말이다. 이리하여 농촌여성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하나의 
        신예부대가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상품경제가 보다 발달한 지역에는 상품생산의 
        노동력 가운데 여성이 약 50∼55%를 차지하고, 여성들이 생산한 상품 총 
        생산량이 55∼56%를 차지한다. 이와 더불어 농촌의 수많은 여성인재들이 두각을 
        나타내 과거에는 조용했던 시골여성들이 운영 및 관리능력을 갖춘 여성개혁가, 
        기업가로 변신하였다. 여성이 주력인 전문농가가 전체 농가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리하여 같은 업종에서 남녀가 같은 보수를 받는다는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중공업의 비율을 낮추고, 경공업의 발전에 치중하여 3차산업을 
        개척함으로써 여성들의 직업시장에 광활한 무대가 펼쳐졌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도시에서 여종업원수의 연평균 성장율은 4.9%로써 전체 종업원수의 
        연평균 성장율보다 1.27%가 더 높다. 1988년에 와서 3차산업에 종사하는 
        여종업원수는 1978년보다 988만명이 늘어나 83.7%라는 높은 성장율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1차산업과 2차산업의 49.1%의 성장율보다 훨씬 높다. 
        관계부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0년에는 1차, 2차, 3차산업의 노동력에 대한 
        수요비율의 순서가 '1·3·2'로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80년대 후기부터 각 
        산업별 노력에 대한 연평균 수요비율은 1차산업이 1.09% 줄어들 것이고 
        2차산업이 2.72%, 3차산업이 5.73% 늘어날 것이다. 3차산업의 신속한 발전은 
        여성에 대한 노동력 시장의 수용력을 높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취직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었고 여성들의 취직을 위한 사회환경을 크게 개선해 주었다. 

        경제개혁에서 다른 하나의 중요한 목표는 생산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 '효율'이란 개념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자 지표가 되며 사회발전이 
        종국에는 여성사업발전과 여성해방을 촉진시켜주고 있으나 우리는 또 다른 
        일면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효율을 따지다보니 많은 기업들이 생리상의 특징과 
        다른 자질의 원인으로 해서 여성을 '부담'으로, '발전의 장애물'로 간주하고 
        있다. 1987년에 전국총공회(전국노조) 여공부가 660개 기업의 사장들을 대상으로 
        "남녀에게 다 적합한 업종에서 당신은 남자를, 아니면 여자를, 아니면 남녀를 
        일정한 비율로 채용하겠는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남자를 채용하겠다'가 
        30.5%, '여자를 채용하겠다'가 5.3%, '남녀를 일정한 비율로 채용하겠다'가 
        64.3%로 나타나 남녀에게 다 적합한 업종인 경우에도 남자가 여자보다 더 
        인기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실제 생활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나타난다. 
        (1)종업원을 모집할 때 합격 기준이 공평하지 않다. 즉 남자는 기준이 낮고, 
        여자는 기준이 높다. (2)대학교나 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한 여성들의 직장배치가 
        어렵다. (3)계약제로 취직한 여공들은 출산기에 다시 실업할 위험을 안고 있다. 
        (4)기업들이 노동력을 우열에 따라 제조합하는 경우에는 여성근로자들이 많이 
        밀려나고 있다. (5)사회도처에서 한동안 '여성은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느니 
        '맞벌이 하는 둘 가운데 하나만 남게 하자'는 여론이 있었는데 그 중심적 사고는 
        여성들은 사회경쟁에 나설 것이 아니라 집살림이나 잘해서 남편이 밖에서 업적을 
        쌓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조사를 받은 660개 기업의 
        사장들 가운데서 88.2%가 여성들의 생리적 원인 때문 이라고 대답했고 2.5%가 
        여성들의 문화적 자질의 원인이라고 대답했으며 3.5%가 여성들의 기술적 자질이 
        원인이라고 대답했다. [중국부녀]잡지사가 1988년도에 여성들의 진로전망을 놓고 
        전국의 도시에서 조사를 했을 때 "현재 일부 부처들이 직원을 삭감하면서, 
        밀려난 사람들 가운데 여성이 많고, 대개는 부처들에서 여성 종업원을 채용하기 
        싫어하는 원인이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대하여 "여성들은 애기를 낳아 길러야 
        하기 때문"이라거나 "여성들은 집살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74.8%나 되었고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이렇게 대답한 사람이 다수였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생리적인 특수성, 즉 임신, 출산, 수유가 
        도시여성들의 취직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88년에 있었던 
        전국정치협상회의에서 여성위원들은 인류자체에 재생산(출산을 의미함)에 있어 
        여성들의 기여를 어떻게 평가하며 그것을 사회이익과 어떻게 조화시키겠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사회가 여성의 출산양육기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여성이 부담하고 있는 인류자체의 
        재생산은 본래 사회적인 대사로서 그 가치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사회는 줄곧 그것을 일 개인이나 가족의 일로 간주해 왔다. 그러다가 
        국가에서 여성보호정책을 실시하게 되자 과거에는 여성직원의 소속 부서가 그 
        출산기간의 비용을 부담하였다. 그러나 개혁을 실시한 후부터 기업들이 경제적 
        효과를 따지면서 이런 '성별에 의한 손해'를 부담하지 않으려 하게 되었다. 
        이러한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방법은 사회가 부담하는 
        '여성출산수유기금'을 설치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정년연금을 
        분배하는 방법을 본따 기업들이 종업원 총수에 따라서 관계부처에 기금을 
        상납하고 그것을 생산원가 계산에 넣는 것이다. 이 기금에 가입한 기업과 
        사업부처의 여성종업원의 출산, 수유기간의 노임, 치료비, 약값은 기금에서 
        지불하고 이 기금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과 가사부문의 상술한 비용과 
        독생자녀비는 부부쌍방의 소속부처에서 공동부담하게 함으로써 여성종업원이 
        밀접한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기업이 정원제도를 실시할 
        경우에는 여종업원들은 인류재생산의 부담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 여종업원수를 
        일정한 비율로 환산하여 정원을 늘이거나 일정한 수의 예비 종업원을 두는 
        동시에 여종업원이 많은 기업은 상납해야 할 이윤과 세금을 감해주어야 한다. 이 
        안은 지금 강소성의 남통, 호남성의 주주, 요령성의 안산 등 13개 도시에서 
        시험적으로 실시하였는데 이미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개혁·개방을 실시한 후 인력채용에서 '공개적으로 종업원을 모집하고, 자의에 
        따라 지원하고, 전면적인 검증을 거쳐 우수한 자를 선택해서 채용하는'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노동력시장이 활발해지고 구직자들은 자기 직업을 선택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의 특기외 취미와 수입·노동강도, 
        사회적 위치 등을 염두에 둘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상업·서비스업·음식업 등 3차산업 종업원들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도시여성들의 '인기직업'이 되고 있다. 반면에 과거 여성들의 호감을 
        끌던 방적업은 노임이 낮고 노동강도가 높기 때문에 인기가 크게 줄어들고 있어 
        방적업체에서는 종업원을 모집할 수 없고 모집한 종업원들도 흘러나가는 
        형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사회정책을 제정하는 사람들에게 급선무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로 제기되었다. 학자들의 예견에 의하면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생산력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사회가 발전하고 진보함에 따라 주로 
        육체노동으로 하는 작업은 점차 적어지고 근대화한 기술과 지력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작업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성에게 적합한 직업이 
        갈수록 많아질 것이고, 이런 직업이나 업종이 사회여론과 해당 사회정책의 
        존중을 받게 된다면 여성들은 이런 직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다. 반면에 
        정책과 여론상에서 중시와 존중을 받지 못하면 직업·직종은 그것이 여성에게 
        적합하다 해도 결국은 여성들이 외면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그런 업종들은 
        노동력의 결여현상이 야기되어 생산건설의 발전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일반적으로 뚜렷하게 
        향상되었다. 도시 종업원의 1인당 소득이 1978년도에는 664.8원이던 것이 
        1988년에는 1,840,8원으로 늘어났고 농촌의 1인당 소득은 1978년의 
        134원으로부터 1988년의 462.55원으로 늘어났다. 오늘날 도시에는 TV, 선풍기, 
        냉장고, 오디오,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널리 보급되었고 지금은 신제품인 
        에어콘, 가라오께설비, 컴퓨터 등이 점차 일반가정에 들어오고 있다. 소득과 
        소비수준이 높아진 지금의 형편에서 도시여성들은 결코 생계를 위해 취직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부녀]잡지사가 1988년에 전국의 도시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의 
        자료에 의하면 여성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첫째로 염두에 두는 것은 자립, 즉 
        경제의 자립이고 나아가서는 인격의 자립이며 다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살림이 
        더욱 넉넉해진다'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지금 
        중국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것은 인격의 자립을 쟁취하고 평등한 
        사회적지위를 얻기 위한 자의적인 선택이다. 

        지금 중국여성들이 사회노동에 종사하는 것은 시대적 풍조로 되고 있다. 
        '남자는 바깥일을 보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분업 양식은 깨지고 있다. 
        가사일을 여자만 감당하던 것으로부터 점차 남녀가 같이 부담하는 추세로 나가고 
        있다. 국가통계국에서 실시한 표본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의 매일 가사노동시간이 
        50년대에는 5.5시간이던 것이 1987년에는 3시간으로 줄어들었고 남자들은 
        50년대에는 1시간 남짓하던 것이 근 3시간으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88년에 진행된, "당신은 자기 배우자가 직업을 가지기 바라는가 
        아니면 집에 있기를 바라는가"하는 전국적인 조사에서 자신의 남편이 집에 
        있기를 원하는 여성은 5%, 자신의 처가 집에 있기를 원하는 남자는 15.4%였다. 
        위의 사실이 실증해 주는 바와 같이 지금의 추세는 중국여성들이 가정에서 나와 
        사회로 진출하는 것이 주류이며 이 주류는 전통적인 남녀 분업의 관념을 
        종국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개혁·개방시대에 있어서 중국여성의 취직상황을 종합해 보면 바람직한 한편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바람직한 것은 갈수록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생활에 
        진출하여 자기의 재질을 과시하면서 지혜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남자들과 겨루고 있을 뿐 아니라 남자들을 앞서고 있다. 

        그러나 우려가 되는 것은 중국여성들 중에 잠재능력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아직 제대로 발굴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낡은 관습 및 일부 
        구체적인 제도의 영향에 있고 또한 여성들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데에도 있다. 여성계가 추구하는 목표는 남·녀간의 취업기회의 균등, 직업의 
        계층과 창조능력의 평등이다. 이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생산력수준이 계속 
        향상된다는 전제하에 그 산업구조를 합리적으로 계속 재구성하고 여성들의 
        취업범위를 부단히 넓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뒷근심을 
        최대한 덜어주어야 한다. 

        3. 개혁은 여성들을 참정에로 부르고 있다. 
        여성이 참정·의정한다는 것은 여성해방의 중요한 측면인 동시에 또한 
        국가민주정치의 중요한 내용이며 사회문명이 진보한 중요한 징표의 하나이기도 
        하다. 

        신중국이 창립되자 당과 정부는 여성의 참정문제를 중요시하여 법적으로 
        여성참정의 평등권을 확립하였으며 중국의 오랜 전통관념인 "남자는 집안일을 
        언급하지 않고, 여성은 바깥일을 언급하지 않는다", "여성은 높은 신분(직위)을 
        가질 수 없다"라는 낡은 관념들을 완전히 부정하였다. 1951년에는 전국적4으로 
        여성간부가 36.6만명으로써 같은 시기 간부총수의 13.5%를 차지했다. 그 후 
        사회주의사업이 발전함에 따라 여성간부의 대열이 점점 확대되어 1978년에는 
        전국적으로 각급, 각종 기구에 상당수의 여성간부가 있게 되었고 간부총수의 
        25%를 차지하게 되었다. 80년대 중반 경제개혁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보다 나은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체제개혁을 시행하기 위한 일정이 
        잡혔다. 중국에서 정치체제의 개혁을 시행하는데 있어서 그 기초이며 주요 
        근거가 되는 것은 먼저 사회주의 공유제의 생산수단은 전국민이라는 것이다. 
        개혁개방이라는 위업을 행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생산수단의 이용, 개발, 분배 
        등은 가능한한 많은 국민에게 보여져야 한다. 또한 사회주의 생산관계에서 
        사람과 사람사이는 평등하며, 국가와 사회의 여러 업무에 참여, 관리, 지도하는 
        것 등은 모든 국민의 권리이다. 관리하는 사람은 반드시 민중의 감독을 받아야 
        하고, 결책시에는 다수 국민의 이익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밖에 사회주의 
        공유제는 "자신의 힘닿는 데까지 하고, 노동에 의한 분배"라는 제도를 실행하고 
        분배시에 그 분배가 합리적인지의 여부를 노동자(근로자)가 심사·평가한다. 
        때문에 민주정치, 국민의 정치참여, 감독·관리 등은 개혁에 더 한층 박차를 
        가하는 필연적인 산물이 되었고 만일 제때에 정치개혁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모든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것이다"라는 내용들을 기초·근거로 삼고 있다. 

        개혁·개방은 여성들에게 사회사무관리에 참여할 수 있는 무대를 열어 주었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정치건설과 법건설에 진출하려는 각계 여성들의 열정을 
        북돋워 주었다. 80년대 후기에 광활한 중국 국토에는 이미 많은 여성 
        공장장·경리(사장)와 우수한 여성 기업가 및 각급의 각종 여성지도간부 
        800여만명이 배출되었다. 이런 여성 간부는 1978년 3차 중전회의 이전보다 75% 
        늘어났고 간부총수의 28.8%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 1988년도의 통계에 따르면 
        8만여명의 여성 간부가 성급·지구급·현(처)급의 당과 정부의 지도적 직무에 
        있거나 현(처)급 이상의 기업·사업부문의 공장장·경리(사장)·원(교)장 직무를 
        맡고 있다. 그 중 1982년 이후에 승진한 간부가 4만명이나 된다. 국가의 
        고위급간부를 놓고 보면 50년대만 해도 전국적으로 여성 부성장이 2명밖에 
        없었는데 1988년에 와서는 여성 정·성장이 13명이나 되었다. 1954년 제1기 
        '전인대회'때에는 대표와 상무위원 여성이 각각 11.9%와 5%밖에 안되었지만 
        1988년 제7기 '전인대회'때에는 각각 21.3%와 11.6%로 늘어났다. 
        전국정치협상회의에도 1949년 제 1기 때에는 여성위원과 상무위원이 각각 6.6%와 
        6.9%였지만 1988년 제7기때에 와서는 각각 13.6%와 9.7로 늘어났다. 

        개혁·개방 시기에 들어와서 중국의 여성문제와 그 절박한 현실성이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 전면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가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낡은 제도 및 그 
        폐단(직업여성들의 이중부담과 여성의 진보에 불리한 각종 전통관념을 
        망라하여)으로 인하여 여성문제가 고질화되어, 다소 풀리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한 해결을 보자면 거리가 멀다. 개혁개방의 새로운 바람으로 나날이 
        깨어나고 있는 여성들은 더 이상 이러한 문제들을 참고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둘째로, 사회의 여러 측면에 미치는 제도개혁으로 인하여 여성문제가 어느 
        때보다도 더 날카롭게 폭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학교 여자졸업생을 직장에 
        배치하기 어렵다는 문제는 여성의 취직문제인 동시에 여성에 대한 
        관념문제이기도 하고 또 여성교육문제이기도 하다. 셋째로, 제도개혁 자체의 
        굴곡성과 여성문제의 복잡성이 여성문제와 관련되는 개혁을 어렵게 만들고 있고, 
        능률과 공평이 모순되는 것처럼 어떤 개혁의 목표와 실제 성과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여성문제를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모순이 격화되고 그 
        본질이 제시됨으로써 많은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자아의식을 점점 강화하게 
        되었다. 여성들은 지금 개혁의 기세를 빌어 법률이라는 무기를 들고 자신의 
        합법적 권리를 보호하면서 사회생활에 진출할 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불평불만과 위기감이 여성을 깨어나게 하였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불평과 위기감을 많은 여성들이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바로 여성계의 많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지식여성들로 그들은 
        근 10여년동안 계속해서 온 힘을 다하여 돌봐주고, 자각시켜주었으며 그들 
        지식여성들은 많은 여성과 사회전체에 각성의 경종을 울려준 것이다. 

        중국여성들이 비교적 높은 층의 정치생활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민대표회의에 들어가는 것이다. 각급 인민대표는 직접 
        동급의 결책에 참여할 수 있고, 동급정부의 관리를 감독할 수 있고, 관리자를 
        임명, 소환할 권한도 있다. 농촌은 향1급부터, 도시는 구1급부터 인민대표가 
        있다. 지금 각급 인민대표대회의 여성대표는 대표 총수의 20% 가량 차지한다. 

        둘째로는 정치협상회의에 들어가는 것이다. 정협은 주로 중국국민당혁명위원, 
        중국민주동맹, 중국민주건국회, 중국민주촉진회, 중국농공민주당, 구삼학사, 
        대만민주자치동맹, 지공당 등 8개 민주당파의 성원과 지명도가 있는 무소속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협'은 공산당과 '장기공존, 상호감독'하고 '서로 
        진심을 터놓고 영예와 치욕을 같이'하면서 공산당과 정부의 관리에 대해 건의를 
        하고 감독역할을 한다. 현재 각급 '정협'위원 총수에서 여성위원이 13%가량 
        된다. 

        셋째로는 직접 행정관리와 생산관리에 참가하여 행정구나 기업에 대한 
        결책·집행 등 실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지금 현(처)급 이상에 약 8만명의 중급 
        및 고위급 여성간부가 있다. 

        중국여성들은 이밖에도 일부 정치조직에 가입해서 참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1988년 현재 중국 여성 가운데 공산당원이 600여만명으로 당원 총수의 
        14%가량을 차지한다. 공회(노조)의 여성회원은 3647만명으로 회원총수의 
        37.9%이며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의 여성단원은 2183만명으로 단원의 37.7%이다. 
        민주당파의 성원을 보면 1989년 현재로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의 여성당원은 
        8,632명으로 당원의 38%이며, 중국민주동맹의 여성동맹원은 2만6709명으로 
        동맹원의 30%, 중국민주건국회의 여성회원은 9천421명으로 회원의 18.5%, 
        중국민주촉진회의 여성회원은 1만7610명으로 38%, 중국농공민주당의 여성당원은 
        7,879명으로 당원의 17.6%, 구삼학사의 여성사원은 1만1139명으로 사원의 18.5% 
        대만민주자치동맹의 여성맹원은 407명으로 동맹원의 4.13%, 지공당의 여성당원은 
        4,061명으로 당원의 40%를 차지한다. 

        중국여성은 또 자체의 조직체를 통하여서도 참정할 수 있다. 

        중국에서 제일 큰 여성조직은 중화전국부녀연합회(이하 '전국부련'으로 
        칭함)이다. '전국부련'은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전국 각 민족의 여성 종업원, 
        농민, 지식인, 기타 노동여성 및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애국여성과 조국의 통일을 
        옹호하는 애국여성의 대중조직으로서 중국공산당과 여성의 유대성 조직이다. 
        전국의 각 성·시·자치구 및 그에 소속한 시·지구·자치주·현·향·진마다 
        부녀연합회(이하 '부련'으로 칭함)가 있다. '부련'의 촌일급 기층 조직은 
        부녀대표회이다. 1988년 현재 각급 '부련'조직이 6만 8000개이고, 기층 
        부녀대표회가 89만개이고 전임 여성간부가 9만 8000명이다. 각급 '부련'조직들은 
        중국공산당의 영도하에 당의 중심사업을 둘러싸고 적극 동원되어 주동적이고 
        자립적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다. '부련'은 광범한 군중성을 지닌, 여성대중의 
        구체적 이익을 대표한 여성 자체의 조직으로서 여성들의 옹호를 받고 있는 
        여성들의 '친정집'이다. 새로운 시대에 당면한 '부련'의 과업은 다음과 같다. 
        ①여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여성들의 정치사상 및 문화과학의 자질을 높이고, 
        이와 동시에 이상, 도덕, 문화지식, 기율성을 갖춘 자존, 자신, 자립, 자강의 
        신형의 여성을 육성해내는 것이다. ②여성과 아동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고 
        여성과 아동을 차별, 학대, 천대, 박대하는 모든 행위와 단호히 투쟁하며 여성과 
        아동의 참다운 대변인이 되는 것이다. ③사회주의적 사상과 도덕을 기준으로 
        연애, 혼인, 가정문제를 대하도록 여성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④아동과 소년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각계를 움직여 아동복지사업을 잘 하도록 하고 
        가정교육을 잘 하는 것이다. ⑤각 민족, 각계 그리고 다른 종교를 가진 여성들의 
        대단결을 강화하며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⑥세계 각국 
        여성들과의 상호지원체제를 발전시키며,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세계평화를 
        수호하여 인류의 진보를 추진시키는 것이다. 

        중국에서 또 하나의 비교적 광범한 여성조직은 기층 공회(노조)산하에 있는 
        '여성공공작위원회'이다. 하부조직(말단조직) 노조인 여공공작위원회는 
        노동조합의 한 작업부서로 공산당이 노동자계급 중의 여성단체를 지도하는 
        기구이다. 1985년 8월 전국노총(전국노동조합 총연합회)의 서기처가 통과시킨 
        <하부조직 노조여성근로자 작업위원회> 조례(조항)의 규정은 노동조합의 
        여성회원이 50명 이상인 하부노조는 여성근로자 작업위원회를 만들도록 되어 
        있고, 50명 이하 일때는 여성근로자위원을 만들고, 노조의 여성회원이 500명 
        이상일때는 여성근로자 작업간부 전담반을 구비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1988년 
        현재 공회 산하 여공공작위원회가 16만 810개인데 200여만명의 여성간부가 
        전임으로 혹은 겸직으로 여성에 대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들의 임무는 
        여성종업원에 대한 사상 교육을 잘 시키고 여성근로자가 사유(이상, 도덕, 지식, 
        규율이 있다.)와 사자(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중시하며, 스스로 강해지는 
        것)의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이외에도 그들이 문화, 기술을 높일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해 주며, 여성종업원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해주며 
        여성종업원에게 관계되는 노동보호 정책, 법령, 규정은 관철 집행하도록 행정을 
        감독하고, 협조하여 탁아사업을 잘하며, 여성 노동모범, 선진생산자(노동을 
        잘하는 열성 노동자에 대한 영예 칭호의 일종이다)들에 대해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여공공작위원회는 '부련'의 단체회원으로 되어 그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서로 조화하면서 여성종업원에 대한 사업을 잘 할 수 있다. 

        이밖에 각 민주당파들도 모두 여성사업기구로서 '부녀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다. 그들은 해당 당파의 전체 여성 및 그들과 연계를 가지고 있는 사회의 
        여성대표인물이나 여성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여성사업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민주촉진회의 부녀위원회는 전체 회원의 3분의 1에 해당한 1만 7610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교육계·출판계와 기타 문화계에 분포되어 있으며 
        70∼80%가 대학교, 고등전문학교, 초등학교, 학령전 교육기구와 사범대학교의 
        중·상층 중견인물들이다. 그 가운데는 많은 사람들이 각급 
        인민대표·정협위원·'삼팔'홍기수(여성모범인물에 대한 영예 
        칭호)노동모범·특급교사·우수교사'오호'가정대표(모범가족에 대한 영예 
        칭호)들이다. 이 부녀위원회는 여회원들의 특성을 잘 발휘시키고 조국의 
        사회주의적 문화교육사업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산하 여성회원들을 동원하여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노해방구, 소수민족지구, 변강지구, 
        궁벽한 지구에 들어가서 그 곳을 도와 교원강습, 탁아소 소장 강습, 독생자녀 
        강습, 학부형 강습 등을 시켜 사회교육과 재직자 교육을 발전시키고, 가정교육 
        자문 봉사, 교육 연구 등을 벌여 각종 유형의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중국 여성계에서 자발적으로 각종 사업의 지식인·기업가 등 
        여성들의 친목회·협회를 설립하였고 여성, 혼인, 가정연구회 등도 설립하였다. 
        이런 민간단체는 전국의 방방곡곡에 다 있는데 지금 '부련'에 등록한 것만 해도 
        근 1,000개나 된다. 그런 단체의 활동내용을 보면 일반적으로 정보(예를 들면 
        과학기술, 사회과학, 직업, 업종, 인재, 정보 등이다)를 교환하고, 횡적 연합과 
        합작을 주선해 주고, 사회조사를 해서 정부나 관계부처에 자문건의를 제출하고, 
        자기 단체의 특징을 보아서 그에 알맞는 사회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민간단체들은 수만명의 여성들을 받아들여 사회생활에 관심을 돌려 진출하도록 
        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많은 남성들까지도 여성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연구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여성들이 정치에 진출하는 길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몇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급 지도 기관에서 임명하는 것이다. 

        둘째는 대중에 의하여 선거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상황이 있다. 즉 한 
        가지는 상급에서 명문으로 여성을 몇명 선거하도록 규정한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비율 규정만 없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완전히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셋째로는 자진해서 한 개 기업소를 도급맡는 등 자진해서 중임을 맡는 것이다. 

        넷째로는 '부련'조직에서 추천하는 것이다. 

        상술한 가운데 마지막 두 가지는 최근 널리 실시되고 있는 방법으로써 이것은 
        여성들의 참정에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주었고, 참정에 대한 여성들의 열성과 
        주동성을 높이는데 유리하게 하였다. 

        오늘날 중국여성들이 참정·의정에서 기꺼운 한 걸음을 내딛기는 했지만 
        이론과 실천면에서는 아직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 

        이론면에서 여성들이 규정된 일정한 비율에 의하여 참정하는데 대한 의견 
        차이가 심하다. 정원을 규정해서 그 보장하에 참정하는 것은 진짜 평등 경쟁이 
        아니므로 취할 바가 아니며 또 이것을 가지고 여성들의 정치적 지위가 높아진 
        것으로 간주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역사적 원인과 여성들의 
        참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 인하여 여성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비율을 규정하여 
        뒷받침해 주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렇게 해야만 
        결책부처가 여성들의 이익과 요구를 직접 알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여성들이 
        실천을 통하여 참정에 대한 의식과 능력을 높이도록 하는데 유리하며 여성인재를 
        기르는데도 유리하다. 지금은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후자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4. 자질은 발전의 기초이다. 
        사회의 발전과 향상(진보)은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자질향상에 달려있다. 
        여성의 과학지식적 자질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 지위를 결정짓는 기초조건이 
        되고, 또한 국가·민족 더 나아가서 인류의 발달정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자질향상은 전적으로 교육에 의존한다. 

        중국에서는 국민의 교육정도가 직접적으로 구직자의 직업선택, 임금, 승진 
        등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참여문제에 있어서 중국정부는 간부들에게 '4화'를 
        제창하고 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른 '지식화'이다. 또 결혼문제에 있어서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상대방의 학력, 교육수준, 능력 등을 추구하는 
        추세가 이미 도시·농촌 등에 널리 퍼져 있고, 우생(우량한 소질의 자식을 
        낳음), 우육(우수한 교육)등은 특히 이러한 과학적 지식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양질의 교육은 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므로 
        여성교육의 한 차원 높은 목표는 바로 과학적 지식으로 여성을 무장시켜 여성의 
        자질과 사회생산력의 발전을 서로 적절하게 조화시켜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헌법에는 "여성은 교육을 받을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982년의 헌법 제19조에는 "국가는 각종학교를 
        설립하여 초등의무교육을 보급하고, 중등교육, 취업교육, 고등교육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아울러 취학전의 교육도 발전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또 
        46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은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48조에는 "여성은 교육, 교양(지식)분야에서 남자와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국민의 교육수준을 보다 신속히 향상시키기 위해서 남녀간의 차별을 
        축소하였고 1985년 5월에 열린 전국교육공작회에서 <교육체제 개혁에 관한 
        중·공 중앙의 결정>을 통과시켰다. 위 회의에서 통과시킨 결정 중에는 9년제 
        의무교육실시를 제시하였고 아울러 중국의 넓은 국토면적과 경제발전이 
        불균형하다는 특징을 감안하여 대체로 전국을 3지역으로 구분하여 9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와 같은 지역별 교육방침은 현재와 같이 도시는 높고, 농촌은 낮으며, 
        평원지역은 높고, 산간지대는 낮으며, 동부는 높고, 서부지역은 낮은 중국여성의 
        교육수준에 비추어 볼때 매우 적합하다. 

        통계에 따르면 근 40년 동안 중국여성들의 교육은 비교적 크게 향상되었다. 
        1988년도 소학교의 여학생수는 45.6%로 1951년의 28%보다 17.6%가 늘어났다. 
        중학교(고등학교 포함)의 여학생수는 40.9%로써 1951년의 25.6%보다 15.3% 
        늘어났다. 대학교의 여학생 수는 33.4%로 개혁·개방 전의 최고였던 1951년의 
        22.5%보다 근 11%가 늘어났다. 한 가지 두드러진 현상은 도시여성 종업원 가운데 
        중등이상 교육수준이 88.32%인데 비하여 남자 종업원은 84.68밖에 안되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그 안에는 많은 문제가 내포되어 있고 그 중 가장 
        두드러진 문제로는 아래 3가지를 들 수 있다. 

        가. 여자아이(소녀)는 배움의 기회를 잃는 경우와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는 
        비율이 높다. 
        1988년 전국에는 약224만의 취학연령의 여자 어린이가 입학을 하지 못하여 
        입학을 하지 않은 전체아동수의 83%가 된다. 국가통계처 인구센서스조사에 
        의하면 1987년 전국의 1%에 해당하는 인구에 대한 표본조사자료에 근거하여 볼 
        때 1989년 중국에는 약 4000여만명의 취학연령아동이 입학을 않거나 중도에서 
        학업을 포기하였고 그중 배움의 기회를 잃은 여자어린이의 비율은 3000만명으로 
        70∼80% 이상을 차지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첫째, 개혁개방 이후 중국인들 사이에는 
        물질만능주의 사상이 팽배하여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장기적인 이익을 
        생각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둘째, 여자는 재주가 없어야 덕이 있다는 
        남존여비의 사상, 즉 남자는 중시하고 여자는 경시하는 전통적인 관념의 영향을 
        받아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학부모(특히 농촌의 일대낙후지역)들은 여자어린이를 
        학교에 보낼 필요가 없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세째, 지방도시의 기업이 
        불법으로 아동(미성년자)을 대량으로 고용하자 돈벌이에 급급한 어른과 
        어린이들이 그러한 지방도시기업으로 떼를 지어 몰려갔다. 자료에서 나타나듯이 
        1980∼1987년 사이에 학습의 기회를 잃거나 중도에서 포기한 4000만 국민학생 
        가운데 지방도시에서 각종 돈벌이에 참여한 비율은 75%이다. 넷째, 학교의 각종 
        비용이 큰 폭으로 뛰어올라 상당수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주로 낙후한 
        농촌지역의 학생)이 부득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다섯째, 현대의 
        중국은 지식층에 대한 대우가 지나치게 낮아 육체노동이 정신노동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나 많은 학부형,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 비교적 발달한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동부 
        연해도시의 영주사람은 '요즘세태는 국민학교, 중학교만 졸업을 하면 큰돈을 
        벌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얼마간의(약간의)돈을 벌 수 있으나 대학까지 마치면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요즘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이밖에 학교기숙사 생활이 지나치게 긴장되어있고, 교사가 부족한 
        상태이며, 개학이 어렵게 되자 초중학교 학생들이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게 
        되었고, 이로 인해 차별을 받아왔던 여학생이 받은 충격은 더욱 크다. 

        나. 여성문맹 비율이 높다. 
        1990년 전국 제4차 인구센서스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15세 이상의 문맹인구는 
        1억8000만명으로 전국전체인구의 15.88%이며 이 비율은 전국의 평균치이고 
        남녀의 평균치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농촌의 문맹은 전국전체 문맹수의 90%를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서 특히 여성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오랜 기간동안 
        누적되어온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여자어린아이의 취학기회 상실비율과 
        학업중도 포기비율이 높다는 것과도 깊은 관계가 있어 설사 고령자 문맹을 
        퇴치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문맹이 다시 나타나게 마련이다. 특히 여성들은 
        집안일에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고, 대중매스컴과의 접촉이 결여되어 있으며, 
        교통이 불편하다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문맹을 퇴치하여도 다시 새롭게 나타나는 
        반복의 연속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성자신의 바로 이러한 
        자기경시, 봉건폐쇄적인 정신, 남성에 대한 의존 등과 같은 자아의식의 결여가 
        여성들로 하여금 문맹, 반문맹상태에 머무르고 있으면서도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저해시키고 있다. 

        다. 교육(문화)수준이 높을 수록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낮다. 
        1985년 중국의 전체학생 중에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국민학생은 
        40.2%, 대학생은 30%, 대학원생은 8.6%로 전체적인 여성이 교육수준이 남자보다 
        낮으며, 이는 사회내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열악함을 의미한다. 
        중국정부는 상술한 3가지의 문제에 비추어 국가의무교육법을 제정하였다. 그중 
        제11조는 그 어떤 조직이나 개인은 의무교육을 받아야 할 취학기의 적령 아동과 
        소년을 종업원으로 모집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였다. 국가의 관계부처에서도 
        상응한 정책을 제정하여 만 16세 이하의 노동자 모집을 엄금함으로써 실학과 
        중도퇴학을 통제하고 있다. 전국부련에서는 1988년 11월 23일에 
        <여성문맹퇴치사업강화에 관한 통지>를 내어 기존의 여자학교와 전문학교, 
        여성의 집, 여성강습센터 등 여성교육기관을 충분히 이용하여 각종 형태의 
        문맹퇴치 강습소를 운영하고, 각종 유형의 여성문맹퇴치 경쟁활동을 조직하고, 
        여성문맹퇴치를 위한 학습에 참가하도록 고무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전국부련은 1988년에 회의를 열어 관계부처와의 협력하에 여학생의 진학문제 
        및 여자대학교 졸업생의 배치문제를 해결하라고 각급 부련조직에 호소했다. 

        1988년에 중국민주촉진회 명예 주석이자 유명한 교육가이며 문학가인 
        사빙심(謝氷心)은 '애들을 구원하자'고 사회에 호소하였다. 그가 내놓은 
        여자어린이 교육문제에 대한 견해와 건의는 정부와 온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같은 시기에 주로 교육계 인사들로 구성된 중국민주촉진회와 
        기타 민주당파의 각급 조직들은 산하 구성원들을 동원하여 도시에서 학교를 
        운영하고 농촌에 내려가 가난한 지방을 돕고 교육사업을 펼쳐 문화, 과학지식을 
        전파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민주촉진회 부녀위원회에서는 또 <아이들을 위한 
        호소>라는 책자를 편찬하여 소년 아동들에 대한 가정 교육,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에 관심을 가질 것을 사회에 호소하였다. 이 외침은 다른 대중적 
        전파매체들의 외침과 함께 강력한 여론의 힘으로 뭉쳐졌다. 이와 같은 일련의 
        법률과 정책의 지지, 그리고 부련과 민주당파의 영향력은 여성교육을 확산해 
        나가는데 대하여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성의 자질을 높이기 위하여 각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을 취하였다. 
        ①여러가지 형태로 여자아이들과 소녀들의 소학교 및 중학교 교육을 보급시켰다. 
        예를 들면 학교 위치를 합리적으로 선택하여 농민 자녀들이 가까운 곳에 입학할 
        수 있게 했고, 실정에 비추어 방학과 수업시간을 신축성있게 정하였고, 
        수상학교, 마배학교, 순회학교 등 여러가지 유형의 학교를 운영했다. 
        ②여성청년들의 고등학교, 고등직업학교, 중등전문학교, 직업대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을 높였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한편으로는 동등한 조건에서는 
        여학생을 진학시키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유형의 여자직업학교를 더 많이 
        설립하였다. 현재 전국적으로 이런 학교들이 적지 않으며 이런 여자학교들은 
        두말 할 것 없이 여학생들이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을 높이는데 
        유리하다. ③사회교육과 직업교육을 제창하였다. 1978년 이후부터 중국에서는 
        여성의 과외교육이 새로운 시기에 들어섰다. 독서활동에 참가한 여성들만 해도 
        전국적으로 1천600만명에 달한다. 전국부련은 1989년에 '문화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성적과 공헌을 비기자(雙學雙比)'호소를 하여 근로여성들의 과외교육을 
        추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현재 전국적으로 여성들이 문화지식을 배우고 
        과학기술을 배우는 운동이 점차 일어나고 있다. 각급 여성조직들은 문맹자와 
        과학문맹자를 퇴치하기 위하여 각급 성년과외교육기구들과 밀접히 협력하여 
        문화지식 교육과 기술교육을 폭넓게 추진하였다. 예를 들면 각종 유형의 강습반, 
        연합야학교, 훈련반, 강좌, 기술학교 등을 세운 것이 그것이다. 농촌 각급에서 
        운영하는 각종 유형의 과학기술 강습반에 여학생이 보통 50%, 많을 때는 80%까지 
        되었다. 농촌에서 농예사 자격을 따낸 여성이 남자보다 훨씬 더 많다. 

        사회교육의 다른 한가지 형태는 국가에서 학력을 인정해 주는 5가지 유형의 
        성년고등교육이다. 그 5가지란 TV대학, 과외대학, 통신대학, 종업원대학과 
        자습시험이다. 1988년에 상술한 형태의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은 34만명으로써 
        학생 총수의 31.5%를 차지한다. 

        이밖에 각급 지도부와 문화, 과학분야에서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을 
        확보하고 더 높이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지식습득을 위한 교육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지금 일반적으로 이직 연수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국부련에서는 해마다 각급 간부들을 조직하여 연수반, 훈련반, 강습반에 
        보내서 윤번으로 간부를 훈련시켰고 중국부녀관리간부학원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것은 다 이런 성격의 것이다. 

        요약하면 정규교육, 사회교육과 직업교육 이 세가지 방면으로 여성들의 
        교육수준을 높이고 될수록 종신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중국여성들이 직업을 얻고 
        참정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담보이며 선결조건이다. 

        5. 결론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후 사회구조와 사회생활은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따라서 중국여성들도 사회의 변혁과 더불어 보다 큰 변화를 일으켰다. 
        거시적으로 보면 여성들이 법률, 정책, 제도상에서 남녀평등을 추구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평등을 추구하게 되었고 여성해방도 과거의 
        객체지향단계에서 지금의 주체각성단계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금 중국여성들은 
        사회의 변혁이 가져다 준 기회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여성들의 지위는 
        1949년 건국 이후 크게 향상되었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생산에 종사하고 있고, 
        정치, 경제, 문화, 의식면에서 법률과 정책에 의하요 남녀평등권을 보장받고 
        있으며, 참정, 의정이 더 이상 개별적 여성의 특권이 아닌 것으로 되었고, 
        보편적으로 신식교육과 정규학교 교육을 받고 있다. 중국여성들의 지위는 최근 
        10년간 사회생산과 사회생활의 급변과 더불어 향상되었다. 그것은 (1)여성들의 
        직업구조가 날로 합리화되고, 일부 사회생산과 사회경제생활에서의 여성들의 
        역할이 남자로서는 대신할 수 없게 되었고, 여성들의 취직목적이 더 이상 단순히 
        돈을 벌어 살림을 해 나가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날로 각성하여 개인의 가치를 
        실현하려는데 있게 되었다. (2)여성들의 참정이 더욱 광범위하고 높은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고 참정,의정하는 여성대열이 계속 성장하고 잇고 여성조직들이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3)학교교육, 사회교육, 
        직업교육이 발전하고 자기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여성들의 자질도 점차 
        사회생산력의 발전수준에 접근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총체적 면에서는 
        중국여성들의 지위가 아직 남자에 비하여 낮다는 것도 알아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를 한 걸음 더 높이기 위해서는 상술한 몇 가지 측면에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인류가 발전해온 법칙에서 볼 때 중국여성들이 앞으로의 발전에서는 
        상대적으로 우세에 처할 것이지만 사회충돌과 진보 가운데서의 자기감당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항상 곤경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으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즉 한편으로는 사회를 촉구하여 
        정책면에서 여성들의 발전을 위해 더 많은 기회와 유리한 환경을 창조해 주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협조하여 자신의 자질을 높이고 사회참여력과 
        참여수준을 높이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여성들의 역할이 발전하는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하고 진정한 남녀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분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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