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기의 실종(The Erosion of Childhood)
        저자 임춘희
        발간호 제037호 통권제목 1992년 겨울
        구분 ARTICLE 등록일 2010-01-27
        첨부파일 아동기의 실종(The Erosion of Childhood).pdf ( 3.18 MB ) [미리보기]

        아동기의 실종 
        Valerie Polakow Suransky 저 
        윤종희.이재연 역, 서울:교보문고, 1992. 

        임춘희(고려대 강사) 

        I. 
        오늘날 여성의 취업증가로 인하여 사회적인 쟁점으로까지 등장한 탁아문제는 
        최근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탁아문제를 보는 시각이 현실적으로 
        탁아와 자녀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취업여성을 비롯하여 정책입안자, 탁아 및 
        유아교육 관련 종사자들이 정작 아동의 입장을 얼마만큼 고려한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또한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된 조기교육 풍조 속에서 탁아원이나 
        조기교육시설로 보내진 아이들이 겪는 생활 실상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알고 
        있으며, 그 속에서 아동들의 일상적인 경험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한번쯤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미국 사회에서의 탁아 및 
        유아교육에 대한 문제점과 현장실태는 우리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며 비판적인 
        성찰을 하도록 해준다. 

        요컨대 아동이 아니라 성인의 필요에 의해 고안된 탁아제도와 아동보육 
        시설이기에 아동의 요구보다 기성사회의 우선하는 실정 속에서 현대 아동은 
        아동기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며 성장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발달단계인 아동기가 침식 내지 실종되어가고 있다고 보는 저자의 논지는 바로 
        현재 우리 사회의 아동기를 묘사하는데도 문화적 적합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II. 
        책의 구성은 크게 세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아동기 개념에 대한 
        역사적 변천과 접근 방법의 문제 그리고 현대 아동기의 구체적 형태로 대표되는 
        탁아시설 및 아동기의 학교교육에 대한 사회적 배경과 논쟁점을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저자가 2년간에 걸쳐 참여 관찰한 서로 다른 유형의 다섯군데 
        유아교육기관의 교육여건, 교육이념 및 철학, 태도 그리고 문제점과 일상적인 
        생활을 상세하게 비교,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2부에서 기술한 
        사례들을 기초로 하여 오늘날 아동기는 유아관련 교육제도에 깊숙히 내재되어 
        있는 학교교육 같은 사회적 이념 때문에 자연스러운 인생단계로서 잠식되고 
        있음을 몇가지 측면에서 역설하며, 타문화권인 사회주의 국가나 이스라엘의 
        유아교육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살펴 본 후 아동기의 탈제도화를 위한 제언을 
        하고 있다. 

        모두 10장으로 되어 있는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먼저 1장에서는 
        책의 중심주제인 현대의 아동기가 갖는 의미를 탐구하기 위한 출발로서 아동기 
        개념의 역사적 변천을 다루고 있다. Aries를 위시한 가족사가들의 연구를 
        인용하여 아동기의 개념을 10세기의 무지나 공식적인 부정에서 출발하여 계층과 
        성별에 차별을 둔 18세기의 이미지, 아동 중심의 19세기 가족,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 과학적 아동기로 묘사한다. 그러나 현대의 아동기는 단계구분에 
        치중되고 심리학에 의존하여 아동의 실존적 현실과 계획을 통합시키지 
        못하였으며 현대 아동기의 이미지는 성별, 계층별, 가족구조별로 상반되는 
        이데올로기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한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로 
        현대 여성해방론자들이 표방하는 아동기의 이미지를 소개한다. 아동기의 타도를 
        주장하는 화이어스톤(Firestone)의 인공지능적 사회주의를 위시하여 아동기의 
        강제적 변형이나 아동기의 종말을 옹호하는 극단적이 견해에서, 부모됨의 의미와 
        모성애의 체험을 분석한 롯시(Rossi)와 쵸도로우(Chodorow)의 분석을 
        재검토하면서 아동 역시 인간해방의 주요과제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회과학자들이 갖는 현대 아동의 이미지는 발달적 요구와 자아실현의 요구에 
        대한 성인의 견해와 뒤얽혀서 지나치게 심리학화되어 황폐해졌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아동기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할 때는 인간발달을 직선적이고 합리적인 
        인식론에 고착되어 이해하는 경직된 의식구조를 정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아동기란 변증법적 접근으로 세기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미래에 
        대한 인류의 의식 속에서 변화하는 역사적인 움직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의 아동기와 역사상의 아동기의 차이를 분명하게 나타내 주는 구체적 
        차원을 작업의 세계로 파악하여 오늘날 아동이 직업의 세계와 분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현대 학교교육에 관한 Freire의 견해를 좇아서 학교교육제도는 바로 
        이러한 아동기 개념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작업장의 
        훈련장소이자 사회통제체제를 제공하는 유지기관으로 파악한다. 아동의 의미있는 
        노동이 부정되며 성인과 아동의 역할과 생산기능을 엄격히 분리함으로써 오늘날 
        학교는 지식 시장으로 전락하였다. 학교에서의 노동 훈련이란 원자화된 노동으로 
        아동은 실존세계와의 단절을 맛본다. 학교는 아동을 성인과 상이한 연령의 
        아동과도 격리시키며 놀이구조도 인위적으로 구획화한다. 인간발달, 문화발달에 
        필수적인 존재양식인 놀이는 작업하는 교과과정에 의해 규제된다. 이로서 
        놀이/작업이라는 허위의 이분화를 겪게 된다. 그리하여 아동의 놀이형태의 
        중심은 실존적 경험을 벗어나서 구조화된다. 여기서 저자는 아동 생활에서 
        작업과 놀이의 변증법적인 인식의 결여가 현대 아동기의 중심 주제임을 
        강조한다. 이어서 저자는 현존하는 아동기의 이미지에 영향을 주고 교육기관에 
        보급되어 장애적인 결과까지 초래한 제사회심리학 이론이 만들어 낸 아동기의 
        이미지를 조명한다. 가령 정신분석에서는 아동의 공격충동의 표출에 전념한 결과 
        학교의 사회적 기능이 파괴적 충동을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으로 연결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하였으며, 사회학습이론에서처럼 사회화를 특정 사회규범에 
        동조하는 과정으로 간주한 결과, 그러한 사회화에서의 일탈자를 희생양화하는 
        패턴이 생겼음을 지적한다. 행동주의 시각에서는 아동을 생물물리적 존재로 보아 
        학습의 중심이 되며 아동은 학교교육을 통해 통제, 실험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행동수정기법은 특히 아동기의 효과적인 길들이기를 꾀한다고 본다. 피아제와 
        발달단계이론자들은 아동이 성인과 다르게 인식하고 세계를 경험한다고 보았으나 
        지나치게 과학적인 이론 도출을 꾀하였다고 본다. 

        요컨대 오늘날 아동은 일의 세계와 분리되고, 애매한 도덕성 목록과 분류에 
        기초하여 유아화되었으며 아동의 경험과 존재상태가 끊임없이 측정, 평가, 
        수량화되는 학교생활로 제한당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생의 한 단계인 아동기가 
        침해당하는 증거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대 아동기의 의미와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접근 방법의 문제가 2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저자는 우선적으로 조작주의 및 
        기계적 심리주의 그리고 실증주의적 인식론을 버릴 것을 요구하면서 종전의 
        사고/행위, 이성/감정, 주관/객관 같은 그릇된 과학의 이분법은 아동을 분리된 
        기능들의 총체로 환원시킨다고 한다. 아동은 성인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체이므로 아동연구가 아동이 속한 문화적 경지를 무시하고 사물화하고 거리를 
        두는 과정이 될 때는 아동을 수동적 주체로 객관화시키게 되어 사회적 소외의 
        본보기가 파생된다고 한다. 

        저자는 현재의 기술중시 이데올로기가 교육제도 뿐 아니라 아동연구에도 
        실제적인 면에서 큰 영향을 주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비판능력을 길들이고 의식을 
        마비시키면서 현존의 억압구조의 유지에 기여하는 기능적 실용주의를 낳는 
        기술중시 이데올로기가 아동교육을 포함한 교육의 이론과 관행까지도 지배함을 
        언급한다. 

        아동에 대한 현대과학이 방법이나 기술, 이데올로기의 면에서 뒤섞여 있음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해석학적, 현상학적인 자신의 접근방법을 밝힌다. 
        생활세계에서 창출된 의미의 해석은 성인이 재구성한 이질적인 사건이나 삶의 
        형태를 포함해서는 안되며 탐구자와 탐구대상이 방법론적으로 격리되어서도 
        안되며 오히려 이들 두 지평 사이의 중재, '지평의 융합'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아동세계의 관점에서 아동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동이 자신의 의식을 갖고서 
        생활설계를 하는 의도를 갖는 행동 주체이며 역사적 존재로서 세계에 대한 
        행위와 관련된 의미 창조자라는 것이다. 

        저자는 연구방법에 중심적인 것은 분명하고, 생생하며, 신뢰로운 경험, 행위, 
        말, 현상의 묘사이기에 방법이라기보다 적절한 접근으로서 현상학을 말한다. 
        여기서 현상학의 과제로 경험의 중요성에 좌우되는 비판적 견해와 묘사의 과정 
        그리고 관찰대상의 바탕인 핵심주제가 되는 현상의 본질을 꿰뚫으려는 시도를 
        든다. 이 때 상황적인 소세계에 대한 집중적인 참여연구에서 수집된 자료들이 
        광범위한 거시세계에 실제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며, 아동연구와 관련지어 
        사회적 현상학은 아동의 직접 경험에 바탕을 둘 것을 강조한다. 경험적 자료를 
        묘사하고 재구성할 때 비판적, 성차적인 변증법적 분석이 이루어진 것이며 내적 
        구조에서 출발한 주제에 대한 탐색이 외적 구조의 주제탐색으로 이어져 소규모의 
        미시적 상황 분석이 거시세계로 가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한다. 

        3장에서는 탁아시설을 비롯한 현대 아동기의 구체적인 형태를 논하기에 앞서 
        아동기의 학교교육에 대한 배경과 미국의 탁아 역사와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유아나 영아같이 성인에게 의존하고 강한 애착관계를 갖는 취약한 
        성장단계에 있는 아동이 보육시설이나 교육기관에 '수용'될 때 학교교육이 주는 
        막대한 영향력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바로 이것을 탁아에서 검토해야 할 문제의 
        핵심으로 꼽는다. 그리고 현대 탁아상황에 큰 영향력을 준 것으로 
        여성해방운동을 들면서 출생 직후부터 보편적으로 이용가능한 탁아에 대한 
        요구는 여성의 문제로 아동의 문제가 아님을 꼬집는다. 탁아와 애착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동이 부모와 잠시 이별하는 동안 애착할 수 있는 `양육적인 
        대리부모를 제공하는 시설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탁아에 대한 이론적 찬반을 
        고려할 때 현상 그 자체로 돌아가서 시설 속의 세계를 경험하는 아동의 
        일상생활을 파고 들어야 함을 강조한다. 

        III. 
        2부를 구성하는 4장에서 8장까지는 저자가 다섯군데의 각기 다른 유형의 탁아 
        및 유아교육기관에서 행한 참여관찰연구의 사례를 담고 있다. 먼저 4장은 
        예수교파의 센터인 골다마이어 유아원의 사례로, 이 센터는 유대교적인 
        문화인식과 지식획득 그리고 유치원에 필요한 예비적인 사회적 인지적 기술을 
        습득하는 사회적으로 적응된 어린이를 목표로 삼는다. 이 곳에서 저자는 엄격한 
        시간표를 지키며 그러함 점에 아이들이 복종해야 하는것, 그리고 교사의 
        시간표와 아동의 생활시간 경험간의 갈등을 특징으로 파악하면서 이러한 특징이 
        기술중심의 서구산업문화가 갖는 시간에 대한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저자는 유아원에서 아동이 경험하는 시간의 의미에 초점을 두면서 
        개인의 사적, 일상적인 시간을 제도화하고 범주화한다는 것은 예측과 통제력을 
        갖게 해주는 동시에 기술적 실용주의를 촉진하게 해주는데 바로 골다마이어 
        유아원의 경우 기술화, 산업화된 성인세계의 가치관과 일치하여 유아원 교육이 
        조직사회의 제도적인 시간의 사회과정으로 아동은 제도화된 시간을 내재화하는데 
        치중한다고 분석한다. 이 점에서 저자는 살아있는 시간의 사회화로 인해 
        체계적으로 침식당하는 것이 아닌가 반문한다. 놀이를 원하는 아동의 욕구와 
        작업을 하게 하려는 교사의 일정표 간의 갈등이 빈번하며, 분노나 갈등을 
        안정이나 질서에 역기능으로 간주, 신체적 표현을 억압하고 말로 표현하도록 
        하는 골다마이어 유아원을 보면서 저자는 안정과 확실성 위주로 예속의 틀 
        속에서 제한된 자유만을 허용하는 질서유지모형과 관련짓고 그러한 구조는 
        시간적 공간적 인간관계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통제체계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5장은 몬테소리의 수업방식을 지향하는 비지 비 몬테소리센터에서 참여관찰한 
        내용으로, 아동에게 자기 일과 남의 일을 구분케 하는 지나치게 작업을 
        고립화하는데 따른 폐단을 지적한다. 

        각자의 작업을 강조하는 데서 자아중심성은 고립을 조장하고, 퇴행적인 
        자기중심을 고수하게 되어 사회적 협동을 유도하기 어려우며 아동간에 적대감을 
        낳기도 한다. 모든 것이 작업에 집중되며 일에 몰두한 아동은 갈등욕구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분노나 반항의 표현이 부정되고 작업 대신 놀이하는 아동은 
        일탈자로 지목된다. 저자는 이처럼 놀이와 작업을 엄격히 분리하는 풍토에서 
        아동이 놀이하는 권리가 침식 당하며 작업이 놀이의 물화(物化:refication)로 될 
        때 아동기는 관료주의화 됨을 지적한다. 또한 몬테소리의 본래의 교육목적과는 
        다르게 엄격한 통제체계로서 수용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교육관행간의 모순을 
        발견하면서, 교구의 정확한 사용을 강조하는 것은 학습상의 절차를 지향하는 
        정확성에 대한 맹신으로 비판한다. 그리하여 아동의 탐색 자유와 창안능력을 
        부정하고 작업과 놀이를 구별하고, 생산성, 효율성, 동조성을 뜻하는 작업윤리를 
        강조하는 이러한 센터에서의 교육경험은 아동의 조기 관료주의화를 위한 
        훈련장소라고 비판한다. 

        6장은 영리적인 탁아기관은 롤리팝 교육센터에서의 관찰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센터의 특징은 공간에서 다수의 아동을 통제하기 위해 공간과 시간을 제한하며, 
        무자격의 교사진, 아동에 대한 무관심, TV 시청으로 방치하는 등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특징적이다. 이처럼 혼란되고 비인간적인 분위기에 수용된 아동은 
        영리적인 탁아기관의 담보로 도구적 의미만을 갖는다. 또한 교사와 아동 또래 
        간의 폭력이 영속화되고 적대감이 팽배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동유대가 
        점진적으로 와해되며 아동의 놀이가 침식 당하게 됨을 지적한다. 이와 함께 
        계층이 다른 탁아소와 유아원의 아동을 차별함으로써 저소득 아동들이 차별, 
        소외감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기성 사회의 계층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저자는 롤리팝 교육센터가 운영하는 탁아원의 관찰 결과 파괴적인 
        사회적 환경, 애정적 관여의 부족으로 하여 이윤추구의 도구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아동이 비인간화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7장은 정부지원으로 저소득층의 흑인가족의 아동을 위한 마틴 루터 킹 
        보육센터에서의 경험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센터는 저자 자신이 깊은 감명을 
        받고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곳이다. 이 곳의 목표는 아동에게 양육적이고 
        안정된 확대가족의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으로 이곳은 인지적, 신체적 공간이 
        병합되는 것이 특징이다. 아동에게 활동에 대한 압력이나 강제적인 참여도 
        강요하지 않으며 교사는 아동을 감독하지 않고 함께 놀이한다. 전체적으로 
        집단적이면서 가족적인 분위기가 나타난다. 겉으로 나타나는 아동의 갈등은 
        신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갈등은 하나의 규준으로 살아있는 경험과 분리되지 
        않으며 신체적 공격과 애정간의 경계, 그리고 공격성과 협동적인 감정이입이 
        뒤섞여 있다. 이 센터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권위적이면서도 매우 애정이 많은 
        할머니가 돌보아 줌으로써 전통과 과거를 연계시키며 가정과 학교의 중요한 
        다리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곳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표방하지 
        않고서도 아동에게 자유롭고 자발적인 활동을 제공하며, 아동에게 
        낙인(labeling)하는 일이 없으며 일탈과 정상간의 경계가 낮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반집단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며, 함께 나누고 
        노는 집단적 분위기가 권장되어 집단적 공유, 협동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저자는 
        이 센터의 이러한 분위기와 특징이 흑인 저소득층이라는 계층과 문화적 특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하면서도 이 센터의 아동들이 사회적으로 협동적, 애정적이며 
        호기심 많고 총명하고 활동적이며 무엇보다 자유로이 뛰어논다는 점에서 
        아동기가 시설이 주는 속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으로 간주한다. 이와 함께 
        현대의 발달심리 이론을 적용할 때 아동이 속한 문화를 고려하여 문화적 차이에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을 역설한다. 

        8장은 닐(A.S.Neil)의 썸머힐 교육철학에 의거한 비영리 사립의 자유학교인 
        파인우드 자유학교를 묘사하고 있다. 이 학교의 특징은 아동의 자유를 보장하며 
        형식적인 교과과정이나 시간과 공간의 구획을 없애는 것이다. 즉 계획된 
        교과과정이나 일과표가 없다. 이 곳에서의 대부분의 일과는 상호작용적인 
        자유놀이로 아이들이 자유로이 환경을 조성할 수 있으며 분노 감정을 말이나 
        행동상으로 공격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저자는 아동에게 무제한적 자유가 
        주어지는 이러한 학교는 기존 문화와는 상반된 가치를 표방하지만 역설적으로 
        경쟁, 무간섭주의, 개인주의, 적자생존의 법칙 같은 일반사회의 경향을 
        초래하였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는 방임주의적 개인주의, 적자생존의 분위기 속에서 아동은 세계 
        속의 타인과 함께하는 존재의 경험이 필요하며, 교사는 교육적 과업을 수행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IV. 
        9장에서는 저자가 참여관찰한 앞서의 다섯 센터에서의 경험적 자료를 바탕으로 
        몇가지 측면에서 아동기가 침식, 실종되고 있음을 역설한다. 요컨대 아동기는 
        자연스러운 상태이자 삶의 한 단계이지만 유아관련 교육제도에 내재된 
        학교교육이라는 사회적 이념이 아동기를 잠식시키고 아동의 존재와 발달에 관해 
        왜곡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특별한 형태의 아동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아동기가 실종되었다고 보는 중요한 근거를 아동 존재의 구성요소인 놀이와 
        시간적 공간적 활동, 일탈과 정당성, 길들이기 교육으로서의 아동기의 이념화, 
        그리고 아동보육 사업의 측면에서 서술한다. 

        먼저 놀이에 대해 저자는 아동이 자신을 실현시키는 양식으로 파악하며, 
        아동이 즉자(卽自)적인 실재를 재조직하고 창조하며 역사를 만들고 변형시키는 
        것은 바로 놀이를 통해서임을 강조한다. 아동은 놀이를 통해 본연의 아동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세계에 대한 연습으로서 놀이는 작업과 이분화되어서는 
        안되며 작업과 놀이의 변증법이 아동기의 기본주제로 간주한다. 그러나 
        유아교육기관에서 일어나는 놀이의 물화(物化) 과정을 볼 때, 자연적인 놀이가 
        부정되고 놀이 그 자체가 구조화되고 인지적 교과과정이 되거나 성인이 구조화한 
        틀 내에서 정의된 자율놀이로 이분되고, 놀이과정 또한 산업사회의 
        생산기능지향의 거짓된 작업구조로 변형되었다. 참여 관찰한 네 군데의 
        센터에서는 놀이의 자유로, 의미있는 일의 자유도 없으며 세계에 대한 아동의 
        작업/놀이행위도 시설기관의 요구와 마찰로 제한되는 것을 목격한 저자는 
        아동기의 존재양식인 놀이/작업의 변증법이 교육제도에 의해 침식 당한다고 
        비판한다. 

        아동의 시간적, 공간적 활동과 관련하여, 시간이란 여러 의도의 관계성으로, 
        의식을 가진 존재인 아동은 시간을 구성하고 시간은 아동을 거쳐서 흘러가는데 
        그러한 원형적 경험은 유아기에 일어난다고 본다. 그러나 거시사회 체계에서의 
        시간 개념을 반영하는 시간의식 즉 시간을 하나의 대상으로 객관화하는 구조로 
        인해 어린 아동의 생활시간의 경험이 방해받는다. 하루 일과를 시간적으로 
        도식화하는 제도화된 시간은 다시금 그 시간 내에서 수행되는 특정의 공간적 
        활동을 규정한다. 제도화된 시간의 기능 시설의 운영진이 예측과 통제력을 갖게 
        하며 아동의 생활시간세계를 개조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놀이하는 아동을 
        저지하는 것은 바로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목격한 저자는 탁아기관의 담당자들이 일탈로 인식하는 대다수의 활동이 
        놀이속성에 고유한 것으로 파악하며, 아동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반항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일탈의 문제와 관련하여 오늘날의 아동은 
        제도 속에 들어간 아동이 진정한 자기를 추구할 때는 일탈한 것이 되고 제도에 
        맞게 행동하면 진정한 의미의 아동이 될 수 없는 이중속박에 처해 있음을 
        간파한다. 

        아동기의 실종을 길들이기 교육의 측면에서 볼 때, 진정한 교육은 억압구조에 
        순응하는 길들이기 양식에 있지 않으며 비판의식을 일깨워 억압구조를 
        변형시킨다는 Freire의 입장에 동조하는 저자는 감각운동기와 전조작기에 있는 
        아동에게서 자발성과 호기심을 빼앗아버리는 것은 아동의 창조적 능력의 박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많은 학령전 아동의 발달수준, 관심수준과 무관한 내용을 
        배우도록 강요되며, 계획된 교과과정이 유지되고 시간표가 지켜지며 인지적 
        학습환경이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질서유지모형 내에서 순종적인 아동이 
        곧 적응을 잘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아동은 지시를 따르도록 사회화되고 아동의 
        의도나 분노, 갈등의 표현은 부정하는 센터들의 구조적 엄격성을 목격하면서 
        저자는 애증의 자유, 복종과 불복종의 자유같은 아동생활의 변증법적 경험을 
        융통성 있게 이해함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동기의 실종을 아동보육사업의 측면에서 볼 때, 탁아현상이 기업체계모델을 
        확장, 악화시킬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탁아사업은 아동의 존재를 부정하고 
        영리수단으로 간주함으로써 영리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러한 
        경우 아동의 발달은 소외시되고 최대이익, 최소인원의 구조 속에 다수의 아동이 
        수용되므로 아동은 물화될 수 밖에 없다고 보며 그 때 적대적이고 비우호적인 
        시설 속에서 안식처를 구할 수 밖에 없는 아동에게는 아동기가 실종된 것이라고 
        한다. 

        책의 마지막 장인 10장에서는 아동의 집단화 현상을 막는 즉 탈제도화를 위한 
        대안과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여성과 아동의 문제와 사회주의 
        국가나 이스라엘의 키부츠, 스웨덴에서의 탁아관행을 비교문화적인 관점에서 
        살펴 보았다. 여성과 아동의 문제에서 저자는 여성해방운동이 바로 아동의 
        억압을 초래하는 모순을 가져왔다고 보며 여성해방을 위해 아동이 일찍부터 
        시설에 수용되는, 저당잡히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과 아동 
        모두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정치적 개혁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보며 
        한계상황의 극복을 위해 아동의 다른 형태의 삶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조치를 
        취함으로써 현재 아동의 집단화를 막아야 한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유아기의 탈제도화를 위해서는 아동에게는 한명 이상의 
        애정있는 성인의 열렬한 참여가 필요하며, 공공정책이 부모역할을 하기 위한 
        시간을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을 제언한다. 

        이러한 전제를 고려하면서 지역사회의 부모와 아이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아동에게 우호적이며 협동적인 탁아센터의 요건으로 부모가 적극 참여하며 
        노인과 젊은이 직장과 가정의 요소가 통합되는 지역사회의 일상생활에 자리잡고 
        있는 아동중심의 센터를 구상한다. 이렇게 될 때 아동기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인생단계가 되며 연령 분리된 시설이 아닌 가족공동체 속에 아동과 부모가 같이 
        참여한다고 한다. 저자는 아동의 생활세계를 침식하지 않는 친밀한 아동 
        보육환경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가장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기업적, 
        관료적 세계의 시설구조가 아니라 바로 아동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V. 
        V.P.Suransky가 쓴 The Erosion of Childhood의 번역서인 아동기의 실종은 
        비록 미국사회의 탁아와 유아교육 실태를 비평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서이지만 바로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탁아나 유아교육을 둘러싼 문제와 
        탁아시설 및 유아교육기관의 실상에 대한 핵심적인 쟁점들을 짚어보는데 
        직접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또한 근본적으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아동기에 대한 
        생각과 이념, 가치관을 새롭게 성찰해 보는 기회를 갖게 해 준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역자들의 기대처럼 [아동기의 
        실종]은 분명 일반 부모나 탁아 및 유아교사같이 아동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많은 통찰력을 줄 것이다. 탁아를 생각할 때 물(物) 자체로 돌아가서 아동이 
        겪는 경험을 생각하라는 저자의 충고는, 탁아를 비롯한 아동문제에 대해 성인 
        위주의 편의주의적 사고와 행동, 정책들 그리고 과학적 연구라는 명분 하에 
        아동을 측정 대상으로 삼는 계량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는 학문적 풍조를 반성케 
        한다. 

        저자인 Suransky가 오늘날 제도화된 아동기를 이념화하는 길들이기 교육과 
        탁아사업에서, 영리목적의 기업 패러다임의 측면에서 비판하면서 아동기의 
        실종을 주장한 것은 현대 아동기의 중요한 주제를 잘 포착한 것으로 
        철학적이면서도 날카로운 현실적인 안목을 보여준다. 그러한 분석을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과거에 비해 매우 아동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것으로 보이나 정작 
        아동은 어린 나이부터 제도화된 시설생활을 경험하면서 그러한 생활세계 속에서 
        여러가지 측면에서 알게 모르게 수동적인 존재로 물화되어가는 현실적 모순을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탁아나 유아교육에 관한 저서와 번역서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으나 
        [아동기의 실종]처럼 저자 자신의 경험적 자료를 토대로 현상학적 접근방법으로 
        비판적 시각에서 쓰여진 연구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각기 다른 
        교육이념과 방법을 내세우는 탁아 및 유아교육기관에서 아동이 경험하는 실상을 
        자세히 묘사한 내용과 그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저자의 철학적 사고, 이 모두가 
        탄탄함을 갖추고 있기에 아동을 생각하는 일반인과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것은 아동기에 대한 가치관조차 혼미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아동기의 침식 내지 실종을 막기 위해, 탈제도화를 
        위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용어 선택의 문제를 비롯하여 
        번역서가 갖는 한계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자의 논지를 비교적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기에 [아동기의 실종]으로 번역되어 나온 것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