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의회, 유급 생리휴가 법안 가결
        등록일 2023-03-03

        스페인 의회, 유급 생리휴가 법안 가결

        곽서희, 에라스무스 로테르담 대학(Erasmus University Rotterdam)
        국제사회과학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al Studies) 객원연구원
         
        ○ 2022년 12월, 스페인 하원에서는 여성의 생리휴가 실시, 공공병원에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 이용 가능한 연령 하향 등의 내용을 포함한 법안이 가결되었다. 본 법안은 재생산 권리와 관련된 정책 개혁을 목표로 정부에서 상정한 법안으로, 찬성 190표, 반대 154표, 기권 5표로 하원을 통과했다. 그리고 이번 달 초, 해당 법안은 찬성 191표, 반대 60표, 기권 91표로 상원까지 최종 통과했다. 
        ○ 이로써 스페인은 유럽에서 여성의 유급 생리휴가를 법적으로 도입하는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여성 근로자는 매월 유급 생리휴가 3일을 사용할 수 있으며, 통증이 극심한 경우에 한해서는 최대 5일까지 연장하여 유급 생리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의 생리휴가 급여는 고용주가 아니라 정부 사회보장 시스템에서 지급한다. 이웃 국가인 이탈리아에서는 2016년 3일간의 유급 생리휴가를 보장하는 법안이 상정되었으나 의회 임기 내 통과되지 못한 바 있다. 현재 생리휴가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국가로는 한국,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 잠비아가 있다. 국가별로 유·무급 여부, 휴가 기간 등 세부 사항은 상이하다.
        ○ 해당 법안에 대해 이레네 몬테로(Irene Montero) 평등부 장관(Minister of Equality)은 의회에서 “이번 법안이 실제 시행되면 반대하는 입장이 곳곳에서 제기될 것이라 생각한다. 여성주의 관점을 반영한 정책에는 항상 반대하는 목소리가 따라다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몬테로 장관은 현 정부는 여성의 생리를 건강 관련 권리의 일부로 보고 있으며, 이번 법안은 여성의 생리에 부여했던 여러 사회적 주홍글씨에 맞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여긴다는 견해를 밝혔다.
        ○ 이번 여성 유급 생리휴가를 담은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있었다. 심지어 여당 연합 내에서도 의견이 나뉘었고, 노동조합들도 본 정책안에 각기 다른 입장들을 내놓았다. 스페인에서 가장 대표적인 노동조합 중 하나인 노동자총연합(UGT, General Union of Workers)에서는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오히려 고용주가 여성 고용을 주저하게 되는 악영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여성은 언제 출산할 계획이 있는지와 같이 남성이라면 받지 않을 질문들을 받는데, 이에 하나 더 추가되어 앞으로는 생리통이 심하냐는 질문까지 듣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 반면 스페인의 또 다른 주요 노동조합 중 하나인 노동자위원회(CCOO, Workers' Commissions)에서는 생리휴가라는 개념 자체는 찬성하면서도, 실질적인 법안 내용 일부를 우려하는 입장을 밝혔다. 바로 여성 근로자가 생리휴가를 사용하려면 생리로 인한 통증이 심하고 휴가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를 받아 증명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여성이 유급 생리휴가를 사용하는 문제가 여성 본인이 아닌 의사의 판단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노동자위원회(CCOO)에서 성평등 및 근로 환경 관련 업무를 관할하고 있는 한 담당자는 수많은 여성들이 참기 힘든 생리통을 겪지만 대다수는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 이번 스페인의 유급 생리휴가 법안을 두고 유럽 내 일부 여성단체들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유로뉴스(Euronews)의 보도에 따르면, 한 프랑스 여성단체 대표는 이번 스페인 사례에 대해 매달 며칠간의 휴가를 주는 것만으로는 심각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여성에게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못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여성 근로자를 집에서 쉬게 해주는 제도보다는 생리통과 자궁내막증과 같이 여성의 건강 문제와 관련된 데이터 구축 및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주장과 마찬가지로, 유급 생리휴가 도입으로 고용주가 오히려 여성 구직자와 남성 구직자를 차별하는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점도 제기되었다.
        ○ 이번에 의회를 통과한 법안이 포함하는 또 다른 내용은 임신중지 의료서비스 이용 연령하향이다. 앞으로는 16세 이상이면 아직 미성년자이더라도 부모나 법적 보호자의 동의 없이도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인은 1985년 임신중지를 법적으로 금지했었으나 2010년 합법화했다. 하지만 스페인 사회 내 통념상 지속적으로 논란이 이어진 주제이기도 하다. 스페인에서는 의사의 양심적 거부권 행사로 인해 공공병원의 임신중지 시술 비율이 약 15% 수준에 그치고, 상당수가 민간 의료시설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는 종교적 영향으로 의료진들이 양심적 거부권을 행사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법에서는 공공병원에서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권리를 강화했다. 물론 의료진이 사전에 이미 양심적 거부권에 서명한 사람인 경우, 임신중지 시술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점도 명시했다. 
        ○ 이 밖에도 앞으로는 학교 및 교도소에서 여성들에게 생리용품을 무상 제공하고, 정부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에서는 생리용품뿐만 아니라 경구피임약 및 사후피임약을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2022년에 스페인 정부는 생리용품에 부과하는 부가가치세 폐지에 관한 계획도 발표한 바 있으나, 최종 의회 표결 당시 이 내용은 삭제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다음 예산안 심의에서 이 부분을 다시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번 법안이 스페인 하원과 상원을 모두 통과하면서 여성이 유급 생리휴가를 사용할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반면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이번 법안이 오히려 여성 고용에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 역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스페인 정부는 직장 내 여성의 유급 생리휴가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이행되는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AP News (2023.2.16) "Spain approves menstrual leave, teen abortion and trans laws", https://apnews.com/article/abortion-politics-spain-government-europe-e78fb56160f4bc9f40dc231602059b96 (접속일: 2023.2.22.)
        ■ BBC (2022.5.12) "Spain plans menstrual leave in new law for those with severe pain", https://www.bbc.com/news/world-europe-61429022 (접속일: 2023.2.22.)
        ■ Euronews (2022.12.15) "Spain votes to approve a new law to introduce paid 'menstrual leave' for painful periods", https://www.euronews.com/next/2022/12/15/spain-votes-to-approve-a-new-law-to-introduce-paid-menstrual-leave-for-painful-periods (접속일: 2023.2.22.)
        ■ Euronews (2023.2.16) "Painful periods? Spain just passed Europe’s first paid ‘menstrual leave’law", https://www.euronews.com/next/2023/02/16/spain-set-to-become-the-first-european-country-to-introduce-a-3-day-menstrual-leave-for-wo (접속일: 2023.2.22.)
        ■ France 24 (2022.12.16) "Spanish lawmakers advance 'menstrual leave' legislation, a first for a European country", https://www.france24.com/en/europe/20221216-spanish-lawmakers-advance-menstrual-leave-legislation-a-first-for-a-european-country (접속일: 2023.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