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성 생식 건강의 현실과 정책과제
이지원 런던열대의학위생대학(London School of Hygiene & Tropical Medicine) 개발보건학 석사
- 2024년 12월 11일, 영국 여성과 평등 위원회(Women & Equalities Committee)는 여성 생식 건강의 현실과 의료 체계 내 문제를 조명한 ‘여성의 생식 건강 상태(Women’s Reproductive Health Conditions)’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영국 여성들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자궁내막증, 자궁선근증, 자궁근종, 다낭성 난소 증후군, 과다 월경 출혈 등과 같은 질환의 진단과 치료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의 심각성을 강조했다.이러한 어려움은 의료 제공자가 생식 건강 상태의 특이점을 발견하기가 어렵고 인력의 전문성과 자원이 부족하여 발생하기도 하지만, 영국 의료 체계 내 여성 혐오적 태도와 연구 및 지원 부족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 영국 여성의 약 3명 중 1명은 심한 월경 출혈을 겪고 있으며, 10명 중 1명은 자궁내막증이나 자궁선근증과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복통이 종종 월경통으로 단순히 치부되어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난소 낭종 등 질환을 앓는 여성들은 일상생활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고통을 견뎌내야 하며,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병명을 알지 못한 채 상태가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치료 시기를 놓친 여성들은 영구적인 손상이나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는 심각한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러한 높은 유병률과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성별 고정관념, 사회문화적 요인, 남성 중심의 연구, 편향된 의학 지식에서 비롯된 의학적 여성혐오(Medical Misogyny)가 여성 생식 건강 개선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의학적 여성혐오는 여성이 심각한 통증이나 생식 건강 문제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이를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이는 의료 체계 내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아 여성 생식 질환의 오진율을 높이고, 진단과 치료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만든다. 조사에 참여한 한 여성 환자는 “초경 때부터 월경은 고통스러운 것이고, 참고 견디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들어왔다”고 말하며, 의료계가 여성의 통증을 과소평가하거나 정상화(normalization)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자궁내막증과 같은 질환에 대해 의료 종사자들의 교육 부족, 제한적인 연구와 치료 옵션, 사회적 낙인(pervasive stigma)으로 인해 여전히 질환에 대한 인식 부족과 부적절한 치료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 영국 양당 협력 위원회(Cross-party committee)에서는 성교육(Relationships, sex and health education)에서 월경과 생식 건강에 대한 교육이 충분하지 않으며, 초경 시기에 비해 성교육 시기가 늦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적절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은 여성 생식 질환에 대한 정보를 비공식 경로에서 얻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잘못된 정보 제공과 질병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초경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성교육 시기를 재조정해야 하며, 월경 및 부인과 건강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남성 청소년들에게도 여성 생식 건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사회 전반의 관심을 높이고, 이를 통해 여성 생식 건강에 대한 인식 개선과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영국 보건사회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Social Care)는 2022년 발표한 여성 건강 전략(Women’s Health Strategy)의 일환으로, 1차 시행년도에 여성건강센터(Women’s Health Hub)를 신설하여 센터에 근무하는 보건 전문가들에게 월경 및 부인과 건강에 대한 책자를 배포하여 자궁내막증과 월경통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2차년도에는 해당 교육 자료를 개정하고 자궁내막증과 월경통 관련 연구를 지원하여 이러한 증상 및 질환의 진단 시간을 단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의 미비와 자원 부족으로 인해 진전이 더디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보고서는 생식 건강 상태의 치료 및 진단 경험 개선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긴급한 시행이 필요하며, 조기 진단 개선이 영국 여성 건강전략의 핵심 성과 지표가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영국 여성의 생식 건강 개선에 있어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이하 NHS)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NHS는 진단 및 치료 개선 요구에 대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지만, 보건의료 종사자들 역시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옵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진료 적합성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보고서는 영국 보건사회복지부가 1차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여성 생식 건강 전문성을 개발하고, 질환에 대한 접근성과 참여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생식 건강에 대한 교육 기금을 늘리고, 1차 의료를 제공하는 주치의(General Practice)가 이러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정부에서는 산부인과를 의무 교육 과정으로 지정하고, 여성 생식 건강 전문의를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하며 영국 NHS와 국립보건임상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are Excellence)에서 모든 생식 건강 상태에 대한 포괄적인 지침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여성 생식 건강 증상 및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새롭고 더 나은 진단 도구 및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모든 여성 그룹과 관련 당사자를 포함한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자금 지원자나 정책 결정자들이 이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임상 학계에서도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영국 정부는 여성 건강전략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보다 야심 차고 체계적인 연구 및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향후 영국에서는 여성 생식 건강에 대한 국가적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고, 모든 여성 집단을 포함한 포괄적인 정책이 시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 UK Parliament (2024.12.11.), “‘Medical misogyny’ is leaving women in unnecessary pain and undiagnosed for years”, https://committees.parliament.uk/committee/328/women-and-equalities-committee/news/204316/medical-misogyny-is-leaving-women-in-unnecessary-pain-and-undiagnosed-for-years/ (접속일: 2025.1.16.)
○ House of Commons (2024.12.6.), “Women’s reproductive health conditions”, https://committees.parliament.uk/publications/45909/documents/228040/default/ (접속일: 2025.1.16.)
○ The Guardian (2024.12.11.), “‘Medical misogyny’ condemns women to years of gynaecological pain, MPs told”,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24/dec/11/medical-misogyny-condemns-women-to-years-of-gynaecological-pain-mps-told (접속일: 2025.1.16.)
○ BBC (2024.12.11.), “'Medical misogyny' sees women told to 'put up' with pain”, https://www.bbc.com/news/articles/c23v42jdle7o (접속일: 2025.1.16.)
○ The Standard (2024.12.11.), “What is medical misogyny? Government and NHS face 'urgent wake-up call' on women's health services”, https://www.standard.co.uk/news/health/medical-misogyny-nhs-government-report-b1199437.html (접속일: 2025.1.16.)
○ Healthcare Outlook (2024.9.2.), “Misogyny in Medicine”, https://www.healthcare-outlook.com/healthcare-insights/misogyny-in-medicine (접속일: 202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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